사람 뒷모습에서 온갖 상념이 다 떠오른다. 나란히 교문 앞에 나와 하나는 우로 하나는 좌로 몇 걸음 뗀 뒤 돌아다 본 ㅈ교사 뒷모습 아름다웠다. 땅바닥 네 평(144㎡)교실 문 열면 흙길인데 창밖 골목 남새 소쿠리 옆에 끼고 가던 꽃집처녀 뒷모습 눈에 선연하다. 병약한 친구 돌아서는데 ‘팔팔하던 기상 어디 갔노!’ 눈물이 핑 돈다. せんにんばり(센닌바리/千人針:천인침) 어깨띠 두르고 저승길(?) 짐차 타던 일제 장병들의 뒷모습이나 한국전쟁 불안 공포 분로 삼키며 끌려가던 삼촌 뒷모습 못 잊을 사람 많다. 너른 운동장 터벅터벅 걸어나가는 친구 월보 책 몽땅 사주지 못하고 빈지갑 복도바닥에 딸기 친 무력감이 뇌리를 갈긴다. 뚫린 유리구멍에 입대고 몇 마디 오가는데 ‘시간됐다’ 재촉하는 간수 엄명 따라 문 뒤로 사라지는 뒷모양 바라보며 눈물 주르륵 흘린 부모 봤다. △졸업생 마지막 ‘차렷! 경례!’ 떠나보내고 빈 교실 여긴 ㄱ, 저긴 ㄴ자리 책상 정리하던 담임교사의 뒷모습 처량하였다. △소복한 20대 여인 철부지 애 하나 데리고 노 홀시어머니와 삼위제 남편 떼 무덤 찾아 드는 청상(靑孀) 뒷모습 처절하였다. △이른 아침 여자 출입 싫어하는 줄 번연히 알면서 아들 등록금 빚내러 부잣집 찾아 나선 광목치마 반백 어머님 뒷모습 지우려 눈 비벼도 자꾸 보인다. △마늘 한 짐 팔아 쥔 돈 모낸 삯 반도 못돼 손끝 바르르 떨며 빈 지게 둘쳐메던 아버지 뒷모습이 가슴을 친다. △대목장날 측백나무 울타리 밖 40분에 다시 50분 기다리다가 쥐어준 지화 몇 장 들고 가던 아내 뒷모습 애처로웠다. 강연장 백발 덥수룩함과 제비초리 뒷모양이 노티를 더 풍기며, 국무총리 궂은 일로 마지막 악수하고 차에 오르던 뒷모습 인생무상 함을 말해준다. 거리서 만난 아무개 ‘역발산기개세’ 당당함이 어디 다 가고 굽은 허리, 처진 어깨, 힘없는 발걸음 뒷모습이 측은하구나. 수학여행길 대열 단발머리 여중생이 의원·교수·의사되어 큰일 하니 이 일은 기가 난다. 치렁한 붉은 댕기 삼단 같던 열여덟 ㄱ 비련의 주인공 되어 저 세상에 갔다. 보얗게 싸인 세월의 먼지 속에 가을이구나. 시대의 분노 울화 지워버리고 한없는 한숨 잠재워 과욕 접으며 먼저 찾아가 먼저 섬기는 보혜(輔惠)정신을 발휘해 등 뒤 손가락질 내리도록 처신하라. 내일은 칠월 칠석날 만나고 싶은 사람 견우·직녀처럼 만나보아라. 그런데 다 가고 없다고? 이게 인생이다. 누에번데기 솥에 삶아 죽어도 비단실을 남기더라.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1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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