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 묘를 파 유골을 납골당에 봉안하거나 아예 흔적을 없애버리는 사례가 흔하다.
화산 임 아무개 묘 봉분이 세월 따라 없어지기에 사초를 촉구한 어른이 있다.
김태식 전 국회의원의 공약사업이라는 완주군 고산면 소향리 운문골 댐 공사가 마무리 되면서 그 물을 화산면 화월까지 끌어올릴 땅굴을 파고 골짜기 따라 역류시킬 큰 공사를 하려니 거치는 곳마다 민원이 많다.
이와 관련 임○교 씨도 난감한 일에 휘말렸다. 할아버지 산소 곁에 수로관이 묻힌다는 것이다.
‘노선을 옮겨라.’ ‘아니 됩니다.’ 시비 끝에 결국 묘를 옮기는 쪽으로 타협이 돼 이장하게 되었다.
더운 날 생각지도 않은 면례를 하려니 짜증도 나지만 국책사업이라 협조하는 차원에서 놉을 얻고 기계를 불러 산역을 하는데 주인조차 방치하는 묘에 마음이 쏠린다.
“파가면 좋고… 없어지건 말건 내가 걱정할 게 아니다.” 이러면 그만일 것을 생각이 달라져 굴삭기 기사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감동한 기사는 “예. 해드리지요!” 흙을 이리저리 긁어모아 봉분을 덩실하게 만들자 일꾼들이 달려들어 떼를 입히니 천하 명당(?)이 됐다.
면사무소에서 알듯 말듯 묘한 전화가 왔다. 짐작이야 가지만 모르는 체 땀을 씻고 보니 얼굴이 벌겋다. 직손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금초 계절에 자손이 아니 오면 벌초도 해줄 덕가의 이야기이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남의 조상까지 섬기는 선비의 미거를 보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을 만들어 3-5년 계약을 전제로 기당 몇 만원씩 조합비를 받아 춘하로 두서너 번 둘러보며 잡초를 없애고 잔디만 살려나가면 이문 나는 사업이 될 것이다.
종중이 직접 조합원이 되거나 이들과 연대하면 금초 걱정이 사라질 것이다.
호 다산은 ‘다산사초인(多山莎草人)’ 좋은 전설을 남겼다. 가는 정 오는 인사는 있어야 사랑이 이어진다.
종리 김철수 상투 할아버지는 왜정시대 만주에 간 삼기 사람의 공동묘지 묵은 묘에 팻말을 세웠고, 오랫동안 벌초를 했다. 이 어른이 순천 김씨이다.
/이승철=국사편찬위/史料조사위원(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