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전 이야기도 잘하는 사람 있는가하면 지난 장날 ‘무엇 샀던가?’ 잊은 사람 많다. 지금은 ‘복지’ ‘복지’하지만 곧 이어 인문 교양시대 온다.
사람 겪어보면 오직 성품이더라.
△가양 김석모 씨 도시에서 시집온 며느리 매끼 홀맺은 데를 풀자 ‘아가! 손 얼마나 아프냐?’고 했다.
△같은 마을 김재만 씨 달밤에 냇가 자갈 치워 논을 만들자 땅 두더지라 했지만 그 아들 서울에서 공화지공소 사장 부자이었다.
△궁뜰 김옥회 씨 마음이 유하여 누가 일오라 하면 ‘예’,‘예’ 하루에 갈 집이 여럿이었다.
△하와룡 임윤교 씨 ‘죽으면 썩을 몸 실컷 부려나 먹자’며 명절에도 일했다.
△뒷골 김송회 어머님 뒷재 넘은 장꾼 불러 밥 먹여 보냈다.
△상와룡 안동김씨는 물동이에 밥 숨겨(?) 이고나와 우물 가 어려운 여인에게 주었다.
△종리 임관옥 씨 평생 죽 끓이라 했고 가물어 부잣집 서종 날이다. 해 지자 주인 밥 챙기러 간 사이 여러 놉들 가버렸지만 김명선 씨와 단 둘은 남았었다.
△임전마을 서원길 씨 자기 죽어 외아들 고생 덜 시키려고 ‘엄동 설한에…운운’ 부고장 써 놓았다.
△윗삼기정 구정태 박사 큰집 웃방 선반에는 쓰고 남은 빈 성냥갑 수백 개가 얹혀있었다.
△새터 오춘선 교장 빚 얻으러 온 사람 ‘학비 때문이라’면 두 말 없이 주었다.
△하삼기 손창식 옹 장리쌀 갚으러 오면 말로 되고 나머지 몇 주먹이라도 꼭 남겨 보냈다.
△고산읍내 김진화 부자 걸어 전주 가며 물은 대추 종일 씨 뱉지 않고 집에 돌아왔단다.
△바깥밤실 아침에 옆집 연기 안나면 죽이라도 쑤라고 양식 몰래 갖다 놓았다.
△고산경로당 뜰엔 논 내놓고 죽은 부부 사적비가 있으며, 평지마을 박태근 사장 초등학교 졸업 후 전주 친구 집에서 얻어먹은 밥값으로 그 손자 학자금 거액을 내놓다.
△운주면 용계원 자녀 없이 죽은 노인 마을에서 정성껏 제사지내준다.
△우아동 임병교 진주임씨 종회장 번역본을 발간하고 선조 뜻이라며 타성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성남 덕가 김춘회 씨 그랜저 몰고 내려와 고향 친구 불러 먹이고 너른 세상 구경시킨다.
김철수 등 남은 이야기 등 아직 많은데 벌써 끝이로구나. 우리 모두 마음 밭 잡초를 뽑고 신실한 곡식을 심자.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