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 모를 사람 있으나 우선 뒤로 미루고, 2대 국회의원 선거 이야기 재미난다.
‘갑구’출마자 23인 중 삼례면에서만 10명이 나왔고 결과는 필패 고산면 박양재(37)가 당선됐다.
완주 ‘을구’에선 27인이 출마 조촌면 박영래(49)가 승리했다. 3대 땐 셋방살이 이존화(40)가 동경제국대학 출신 무소속 박정근 현역 국회의원을 이겼다.
당시 최병헌은 의사, 국영호는 사장 어려운 싸움이었다. 그 때 유권자 찾아오면 밥[국수]을 줬다.
이존화는 고산면 율곡리 바깥밤실 오두막집에 선거사무소를 내고 대접할게 있어야지. 주인 이재규는 ‘자운영(紫雲英)’을 삶아 된장 물에 무쳐냈다.
비탈길 걸어 들어선 허기진 손님들 자운영 나물도 감사무지(感謝無地) 고맙게 먹었고 돌아가 종중에서 쌀을, 이웃집에서 장 단지를 이고 와 당선을 빌었으며, 유권자들 제 것, 제 돈 쓰면서 득표활동 유세장을 쫓아 다녔다.
‘자운영’은 풀이다. 논에 심은 자운영 꽃필 무렵 갈아엎어 물 잡아 썩히면 거름이 된다. 곧 ‘거름’을 먹인 것이다. 오직 했으면 이랬으랴? 초근목피(草根木皮) 어려운 말 아니었다.
배고픈 유권자 부자한테 밥 얻어먹고 표는 가난뱅이 찍었으니 이존화 거뜬히 당선됐다.
완주군민 대리만족 어려운 사람 외면치 않는 풍토가 있었다.
그의 묘비 율곡리 종산에 있고 추념비는 비봉면 고향 이전리에 섰다. 지금 같으면 자운영 임자 고발이 있었을 것이고 의사, 사장, 제국대학 출신 현역 국회의원이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신사였다. 봉동 이희준은 이씨끼리 대결은 수치요, 국회의원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며 중도 사퇴하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악담 험담 없이 자기 말만 했다. 유권자가 알아서 찍어 달라는 양반 싸움이었다.
박정근은 진안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이존화와 나란히 의정활동을 했고 후일 국영호 장남 승선은 이존화 청념비건립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제내리 젊은 후보 송재규(26)는 1954년 4월 20일 낙선하고 서울 성동구 금호동 산꼭대기 고학생 자취방을 찾아왔다.
선거 후 이런 미담을 남기는 풍토가 진정한 민주주의이다.
운주면 최성림(28)은 신문지에 이름 석 자를 써서 벽에 붙였다. 선거를 축제로 맞이하자.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