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草)냄새’ 잘 나타낸 시 많고, 풀 잘 그려 ‘풀냄새’ 풍기는 명화 흔하며, 지금도 산야초 그윽한 향기 코끝에 다가세울 시인·묵객·화가 많다.
또 하나의 ‘풀(糊)냄새’! 이는 근래 좀처럼 맡기 어려워 ‘풀(糊)’ 설명 원하는 이 있을까?
△풀이란 무엇을 붙이거나 빳빳하게 하는데 쓰는 것이다.
△전에 보면 끼니마다 밥할 쌀 씻으며 한 술씩 그릇에 모아 푹 삭혀서 풀독(돌)으로 갈아 몽근 체에 거른 후 그 물을 솥에 끓여 되직해지면 국자로 퍼 찬물에 담가두고 광목, 삼베, 무명, 모시옷, 명주와 이불감 푸새를 했다.
풀 센 삼베옷은 사타구니를 갉아 먹었고 풀 먹인 이불 깃 몸에 달 땐 섬뜩 차며 부스럭거려 젊은 내외 잠자리에 매우 조심스러웠다.
‘호구지책(糊口之策)’! 가난을 지칭하는 말로 듣기 싫다. 목구멍으로 쌀밥 고기반찬 산해진미가 넘겨가야 하는데 겨우 ‘풀칠’이라니 가난뱅이의 서글픈 표현이다.
좋은 세상 부드러운 옷 지금은 풀할 필요 없고, 다리지 않아도 화려하다. 이래서 ‘풀(糊)냄새’를 모른다. 전엔 너 나 없이 풀냄새와 체취를 맡을 수 있었다.
비 맞으면 풀기 살갗에 배었고, 붙어 알몸 윤곽이 들어나 겸연쩍기도 했다. 지족선사 황진이의 비 맞은 모시옷 차림에 반하여 결국 파계되었다는 일화 있지 않은가.
낙반 사고로 갇힌 광부 찾아 파고 들어가니 여러 날인데도 살아있었다. 바위틈에서 나는 물에 옷을 적셔 곡기(穀氣)를 빨아 먹었다는 것이다. 한국인 이래서 그 지혜 일등이다.
빨랫줄(대)에서 마르는 모시적삼 풀(糊)냄새가 이웃집 이뿐이를 생각나게 한다. 풀한 빨래 물 뿌려 밟고 개어 다듬으시던 어머님 모습이 그리워진다.
어른들 그릇된 판단 ‘호도(糊塗:성정 어두워 흐리터분함)’하지 말고 아련한 풀 노래를 부르며 모호(模糊)한 행동 조심하라. 6·4 지방선거 홍보물에 ‘호구지책’ 이 말 없어 다행이나 ‘호구지책’으로 나서는 건 아니겠지?
“개혁 대상이 개혁 자리에 앉아 목소리 크게 내는 경우 있다. 이처럼 양심 녹슨 사람들 제 스스로 먼저 반성하고 변화에 앞장서야 한다.” 1994년 10월 김영삼 전 대통령 말씀이다.
풀(草)냄새, 풀(糊)냄새 제대로 아는 사람이어야 민초들의 지지와 환영을 제대로 받는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