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을 보면 뚜껑과 몸통이 있다. 그런데 뚜껑과 몸통의 세계는 천지 차이. 무슨 말이냐면 물병의 뚜껑과 몸통이 붙어 있으면 물병으로서 기능을 할 수 없다. 간혹 큰 빨대를 뚜껑에 꽂아 사용하기 편리하게 만든 것도 있지만 그것도 뚜껑을 전제로 한 것이다. 말하자면 뚜껑과 몸통은 그 사이 간격, 틈이 있어서 온전한 물병이 되는 것이며 동시에 그 간격과 틈으로 인해 물병으로서 하나이면서도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부부도 마찬가지, 아내와 남편은 부부로 하나다. 하나라고 하지만 동시에 완전히 다른 세계다. 그 완전히 다른 세계가 가정이라는, 부부라는 간격으로 만나서 하나가 된다. 그 간격과 사이가 아귀가 잘 맞고 치밀하면 물병에서 물이 새지 않듯 부부로서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으나 반대로 그 간격이 엉성하고 벌어져있으면 물이 샌다.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은 또한 말을 잘 한다’고 한다. 왜 일까? 그것도 간격의 문제다. 위의 문장을 극단적으로 이야기 하면 남의 말을 50% 잘 듣는 사람은 말을 50% 잘 한다고 바꿔 이야기 할 수 있다. 다시 이것을 남의 말을 0% 잘 듣는 사람은 말을 0% 잘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말을 듣는 것과 하는 것 사이에 있는 간격의 문제다. 아이들이 생각을 표현할 때 거슬리는 것이 있을 때마다 훈계를 하곤 했는데 앞에서는 ‘예, 알겠어요’ 라고 답하지만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할 때 아이들이 재대로 듣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제대로 잘 듣기만 할 수 있다면 잘 할 수 있을 텐데...’하며 아이들과 내 사이가 엉성하고 매끄럽지 못하고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아이들과 내 사이의 간격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그 사이의 ‘사랑’ 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와 간격은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한다. 그래서 무슨 규칙처럼 또는 공식처럼 확정해서 표현할 수 없다. 예전에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어느 시골에서 동치미가 너무 맛깔스러워 주인에게 요리법을 물어보니 “물을 채우고 소금을 알맞게 뿌려 넣으면 그만” 이라는 대답을 듣고는 서양 사람이면 이럴 때 물을 몇 cc, 소금을 몇 g 넣으라고 말했을텐데 우리 민족은 그냥 이런 식으로 대충하기 때문에 문제라고. 그러나 내 의견은 다르다. ‘알맞게’ 라는 말자체가 ‘알(핵심, 정수, 핵)’에 꼭 맞게라는 말이니 그 음식을 하는 바람, 습도, 온도, 재료에 적합한, 아니 아주 정확히 꼭 들어맞게 넣으라는 말이니 오히려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음식이라는 것이 온도나 습도, 재료의 습성에 따라 맛이 다르고 발효가 달라지는 것이니 서양 사람들처럼 어떤 상황에도 공식처럼 정해진 용량만을 고집하는 것이 오히려 더 대충하는 것일 수도 있다. 때문에 요리의 그 간격, 사이를 존중한 말이 ‘알맞게’라는 말이다. 수술도 마찬가지다. 척추 수술을 하자면 신경을 만진다. 수술하는 것을 설명한 신경외과 교과서를 보면 장황한 설명이 나온다. 특히 신경을 조작할 때는 그 신경을 다루는 ‘tension(긴장도 : 마비고 올 수 있는 임계점)’ 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 긴장도를 잘 조절해야 사고가 나지 않고 수술을 잘 한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수술을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어디까지 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있지만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의 힘을 주고 어느 정도의 긴장도를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개인차가 심하고 말이나 설명으로 배울 수 없고 다만 경험으로 익숙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아는 것과 하는 것 사이에 있는 간격, 그 사이는 ‘알맞게’하는 수밖에 없다. 척추도 마찬가지. 척추 뼈과 척추 뼈 사이에는 디스크(추간반)라는 간격이 있다. 디스크는 원래 몸의 무게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충격을 흡수하고 운동을 원활하게 한다. 척추뼈 외에 뼈 사이에는 다른 종류의 간격으로 관절이 있다. 관절은 윤활작용을 하고 각도를 내어 움직임이 발생하는 간격(틈)이다. 이렇듯 간격은 벌어져 있는 공간, 비어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역으로 어떤 동작이라도 열려있는 공간이 된다. 만약 ‘사이’, ‘간격’이 없다면 관절은 경직되어 움직일 수 없다. 그리고 움직임이 없는 것은 죽은 조직이다. 오늘은 직원들과의 간격을 생각한다. 그 간격을 어떻게 어떤 정도로 유지하고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알맞게 유지해야 하는 간격이 고정된 사물이나 형식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것 같다. 간격은 바로 운동이고 생활이고 ‘운용’일 수 있고 어쩌면 ‘사랑’일 수 있다. /김재엽 =전주우리병원 원장
최종편집: 2025-06-24 10: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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