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는 종교나 신앙심을 떠나 꼭 지켜야 한다. 금산사가 있어 김제는 돋보인다. 완주군은 어떤가? 화암사, 안심사, 운문사가 유명했다. 6·25전쟁 때 안심사(安心寺)와 운문사(雲門寺)가 불에 탔다. 1980년대 저 남쪽에서 쏜 자와 죽은 이는 있는데 ‘발포 명령자’를 모르듯이 방화 명령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운문사가 있었더라면 ‘고산자연휴양림’ 쉼터가 이곳에 들어섰을 것이다. 절은 불탔고 대아저수지 ‘옛 댐’이 물속에 잠겨 자연도 사람도 달아나버렸다. 이를 재앙이라 한다. 재앙 뒤엔 후회가 막심하다. △안심사 함부로 대할 절이 아니다. 전라도 사람보다 충청도에서 더 잘 받들며 지금도 마찬가지 전국 여러 절 중 높은 반열에 들었다. 우리나라 보물 1306호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란다.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으로 조선의 대학자 권근(權近)이 발문을 썼다. 조계종의 대선(大選)·신희(信希)가 노인들이 편히 볼 수 있도록 중자(中字)로 펴내기를 원하자 성달생(成達生)·성개(成槪) 형제가 필사(筆寫)했고, 도인 신문(信文)이 필사본을 안심사(安心寺)에 가지고 와 간행했다. 이때가 태종 5년(1405)이다. 이조판서를 지낸 김석주가 지은 사적비가 있다. 유척기(兪拓基)는 “고려 초 조구 스님이 처음 절을 열어, 혜장(惠莊)대사가 재창, 도선(道詵)대사가 3창, 세조대왕의 지시로 4창이라 했으니 지금 건물은 5창으로 봐야 하나? 성냥개비 하나로 라이터 찰칵 한 번에 문화재가 연기로 사라지다니…무지의 소치이다. 고산 선비 ‘구위’는 “고전상망격소계(古殿相望隔小溪-작은 개울 사이 두고 옛 전각 마주 보며)…라 읊었고, 국함(鞠涵)은 부려심고사(扶藜尋古寺-명아주 지팡이 짚고 옛 절 찾았네)… 이런 시를 남겼다. 안심사 적설루 판발(板拔)은 송시열 글이다. 점필재 김종직은 1488년(성종19) 안심사에 들려 시 3수를 지었다. 이때 나이 58세. 그 뒤 후학 구형(具瑩)은 김종직 운에 서문을 달았다. 안심사는 황해도, 함경도, 평안도, 충청도, 전남에도 있지만 유독 완주 ‘안심사’ 불에 타다니 심히 안타깝다. 이 두 절의 방화가 없었더라면 완주군의 위상이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 오는 6월 지방자치단체 선거에는 문화를 좀 아는 사람이 당선되었으면 한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10: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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