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닭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힘차게 홰를 치고 나서 시원스럽게 “꼬끼오”하고 울어 젖히는 그 소리 말이다.
어찌 된 영문일까? 궁금증이 커져 견딜 수가 없었다. 집 안에서 재래식으로 닭 키우는 친구 집에 들어 하룻밤 관찰하기로 하였다.
밤 여덟 시부터 새벽 여섯 시까지 죽은 듯 기다리다 보면 이유를 알게 되겠지. 밤낚시 준비하는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밤 열 시쯤 되니 한 녀석이 푸다닥 날갯짓을 하더니 “꼬꾜!” 하고 어설픈 울음을 토해낸다.
옆에 몇 녀석이 “꼬꼬꼬꼬” 하면서 동조한다 싶더니 그뿐, 닭장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초저녁부터 간간이 “꼬옥꼬옥” 하던 중얼거림마저 끊어져 버렸다.
잠이 들었나? 나도 슬슬 졸음이 오기 시작하였다. 끄덕끄덕 졸고 있는데, 한 녀석이 몸의 균형을 잃었는지 “다다다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슬그머니 문을 열었다. 사방이 쥐죽은 듯 조용했다.
계명구도(鷄鳴狗盜)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났다. 제나라의 재상 ‘맹상군’이 진나라 소양왕의 초청을 받아 갔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도망치던 중 ‘함곡관’(函谷關)이란 곳에서 굳게 닫힌 관문을 닭 울음소리를 내어 열게 했다는 유명한 고사 말이다. 사람 목숨까지 살리는 닭 울음인데….
닭은 눈이 좋지 않다고 한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닭을 학대한 적이 있다.
어렸을 적에 시골집 들마루에 누워 낮잠을 청하다 보면 기다렸다는 듯 닭 한마리가 “꼬옥꼬옥“하며 자국걸음으로 다가와 나를 유심히 쳐다봤다.
무엇이 그리 궁금한지 목을 길게 빼고 졸음 때문에 축 늘어진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닭 때문에 풋잠에서 깬 나는 검정 고무신을 들어 이 녀석에게 힘차게 던졌다. 닭은 뒤뚱거리며 도망을 쳤고, 그 모습을 보며 가가대소(呵呵大笑)했었다.
닭은 눈이 나빠 어둠을 보지 못 한대요.
희미하게나마 보이던 세상이 밤이 되면 사라져 버리니 얼마나 답답하고 무서울까.
피신해서 들어간 안방 잠자리 꼬락서니라니. 고작 가로지른 막대기 하나뿐이다.
그 위에서 잠을 자야 한다. 조물주가 발가락을 네 개로 만든 이유가 잠자리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버티개로 쓰라고 그랬던 것일까?
새벽 네 시가 되었다. 곧 닭이 울 것이란 기대로 몸이 잔뜩 긴장되었다.
인기척이 있으면 안 될 일. 그러나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닭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까치발을 딛고 문틈으로 눈을 디밀었다.
실눈 앞에 가느다란 세상이 들어왔다. 안개 자욱한 마당에 평화가 널려있었다. 저 닭장에서 보는 세상도 같겠지.
까치발 딛기를 한 번, 두 번, 세 번…. 다섯 시가 될 무렵 한 마리가 꼭꼭거리며 홰를 치는 듯했다.
그러자 나머지 닭들도 일제히 꼬꼬 하면서 보조를 맞추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 이었다. 닭은 끝내 울지 않았다. 닭장 앞으로 다가갔다.
멀거니 눈망울을 굴리고 있는 닭들이 미웠다. 제구실을 똑바로 하지 않는 그들에게 신발을 벗어 던지고 싶었다.
왜 울지 않을까.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닭은 아침이 오면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으로 몸을 털며 목청을 뽑았을 것이다.
눈앞에서 물체가 보이기 시작하니 기쁨으로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닭이 딛고 밤새 씨름한 나무막대를 가리켜 홰라고 한다. 어둠에서 벗어나자 해방감으로 홰를 쳤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찬란한 여명 앞에서 왜 환희의 찬가를 부르지 않는가. 나는 문틈으로 세상을 보며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인간이 닭을 울지 못하게 하는 거다. 사료 먹여 집단으로 가두고, 잠자리에 불을 밝혀 놓으니 어쩌랴.
안면방해로 잠을 설쳤으니 울어야 할 이유도 의욕도 없어진 게 아닌가.
여기저기서 파상공세를 하듯 울어 젖혀야 따라서 울 기분도 날 텐데 이집 닭은 맥이 풀려 안 우는지도 모르겠다.
고병원성 AI가 창궐하는 요즘, 영문도 모르고 살 처분 당하는 닭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다. 닭장 속에서 훼칠 때 내던 소리와 전혀 다른 소리다.
어쩌다 신세가 이렇게 되었나. 가련한 닭님들이여, 시원하게 울어나 보고 갈 것을….
친구 스마트 폰 벨이 울린다. 닭 울음소리다. “꼬끼오!” 이런 제기랄!
/이승수= 완주우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