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직업 중에 제일 좋은 직업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의사’가 참 좋아하는 일이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의사가 좋은 점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인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진료실 안은 마치 비무장지대와 같다.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화력을 제외하고는 들여올 수 없다. 아픈데 직업이나 지위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특히나 나이가 들면 돈까지 무색해진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일차원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진료실이다. 특히 척추를 전공으로 하고 있는 내가 볼때 척추 질환은 암 같은 몇몇 질환을 제외하고는 대게는 나이가 들면서 오는 퇴행성 질환이다. 나이 들수록 돈이 있어야 대접받는다는 소리도 있지만 진료실에서 체감한 모습은 돈과는 전혀 무관한 것 같다. 돈이 많다고 해서 건강한 것도 아니고 가족들에게 대접을 받는 것도 아니다. 돈이 없어도 며느리에 손자, 손녀까지 진심으로 걱정하고 보살펴 주는 경우도 많이 있다. 말하자면 인격과 사랑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날이 갈수록 늙은 아버지나 어머니의 존재를 자식이 부담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부모의 지친 몸은 일하느라 터진 손등과 굳은 살 박이고, 닳아 얇아진 피부로만 자신이 자식들에게 주었던 사랑을 기억하고 자신의 머릿속 기억에서는 지워나간다. 어쩌면 그것이 노인성 치매인지도 모른다. 나는 환자 몸에 기록된 영상을 보며 과거를 유추하고 치료해 나가는데 자식들이 너무 홀대 하는 경우를 보면 화가 난다. ‘자식은 머리와 가슴으로만 사랑을 알고 부모는 몸으로 사랑을 한다’는 말도 있지만 나도 곧 부모님처럼 나이가 먹고 늙고 아플 수 있다는 뻔한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구는 사람들이 있다. 오히려 이런 사람은 내게는 노인성 치매 보다 더 심각한 인지 기능 장애를 가진 환자처럼 보인다. 청년성 치매라 명명할 이런 젊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특히 초기 증상으로 과거에 부모가 해준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고마워할 줄 모르는 것 같다. 말기 증상은 자신은 늙지 않을 것처럼 바쁜데 ‘왜 이리 자주 아프다고 하냐?’ 고 부모에게 핀잔을 주고 짜증내며 불쾌한 심사를 의료진에게도 표현한다. 이런 청년성 치매는 심각한 인지기능 장애라 그 병에 빠지면 노인성 치매와 똑같이 지금 시점이 언제인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주위에 누가와 함께 있는지에 대한 개념이 없어져 아무 때나 어디서나 남들에 대한 배려나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한다. 노인성 치매라는 단어 뜻을 잘 모르고 단어를 떠올리지 못한다면 청년성 치매는 듣는 사람의 마음에 대한 배려 없이 자기 멋대로, 나오는 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이라 어찌 보면 똑같은 언어기능 장애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노인성 치매와 유사하게 적응 행동이 떨어지고 사회적 행동에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실제로 청년성 치매라는 병은 없다. 하지만 그 진단 기준으로 비유해서 해석하면 요즘 젊은 세대에서 보이는 행동들이 노인성 치매에서 보이는 증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노인성 치매는 과거에 대한 기억장애라 한다면 청년성 치매는 미래에 대한 인지기능 장애라 잠재적으로 더 심각한 것 같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몸이 늙는다. 이런 청년성 치매가 만연한다면 우리의 미래가 너무 슬플 것이다. 진료실 안에서 보았던 훌륭한 인격과 훈훈한 사랑은 사라지고 평화롭던 비무장지대에 다시 돈으로 재무장한 초라한 늙는 몸만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절대 돈으로는 건강과 행복을 지킬 수 없다. 노인성 치매 예방법이 익숙한 환경에서 자꾸 단어를 떠올리고 계산을 하며 머리를 쓰는 것처럼 청년성 치매 예방법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소소한 일상과 작은 행복에 자꾸 반복해서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부모가 베풀어주는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감사한 마음을 갖도록 교육하는 것도 좋은 예방 백신이 될 것이다. 아울러 자신이 부모에게 감사하고 잘 보살피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 효의 개념이 아니라 어찌보면 미래의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고 예의며 사회 전체를 병으로부터 지키는 문화행위다. /김재엽 =전주우리병원 원장
최종편집: 2025-06-24 09: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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