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가리켜 ‘동방예의지국’이라 했다. 이는 중국편의 말로 주변 여러 나라 가운데 동쪽 조선이 특히 예의 바르다는 뜻이다. 중국은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 말을 쓰던 때라 다른 나라와 비교해 추어준 칭찬일 수 있다. ‘예의 바르다’가 나쁜 말이 아니다. 알다시피 「‘되’로 받고, ‘말’로 주는」인정 넘치는 우리 민족 아닌가. 섣달그믐 ‘묵은 세배’를 했으며 정초엔 ‘새해 세배’ 하는데 집안·타성 가리지 않고 어른들 고루 찾아 큰 절을 올렸다. 이 예절이 대체로 정월 보름까지 이어졌다. 세배 손님에게는 꼭 덕담을 하고, 먹여 보내야 마음이 편안했다. 가난했던 시절 아주 좋은 습속이었다. 명분 있고 체면 살려주는 예절이다. 세배가면 걸게 상 차려내니 가난한 사람은 한 끼를 잇대어 기뻤고, 어른들은 존경 받으며 대접했으니 양쪽 모두 좋은 만남이 아닐 수 없다. 아주 멀어 직접 가지 못할 경우 인편에 연하장을 들려 보냈다. 서울까지도. 가는 데만 1주일 대단한 정성 남다른 친분이었다. 《성경》첫 구절은 ‘천지 창조’, 《논어》는 첫 마디가 ‘먼 데서 친구 찾아오니 기쁘다’이다. 근래 기관에서는 단배식(團拜式)를 하는데, 이마저도 변한다면 세배는 아주 사라지는 것이다. 고산 구형(具瑩) 선생이 서울을 떠나 고향 오는 모습이다. “국이나 끓이는 가난뱅이(素乏調羹手)/ 사는 꼴 난감한 사도관(難堪司?官)/ 처자 데리고(提携妻與子)/ 구름 속 천릿길 향하는구나(千里向雲山)” 제목 환향(還鄕)이란 시이다. 근무처 ‘사도시(司?寺)’는 궁중 곡식과 장을 대는 기관인데 여기서 근무한 구형 선생이 이처럼 가난했던 청렴성을 보며 많은 연봉 받는 자들 불평불만 낑낑대지 말아야 한다. 장차 청문회에 나설 야심찬 인재들은 구 선생을 본받아야 뒤탈 없이 출세할 게 아닌가? 공무원 청렴도가 세계 40위를 벗어났다니 부끄럽지 않나? 자동차 기름 값까지 받아 대접이 괜찮은 편인데 기관장들 판공비 사용 설명이 애매하다면서? 120년 전 탐관오리 폭정 때문에 농민혁명이 일어났던 갑오년 진짜 새해를 맞는다. 빚더미 공공기관에서 성과급을 펑펑 나눠 먹는다니 말이 되냐? 왜들 이러지. 좋은 덕담 아쉽구나.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09:4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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