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9년(조선 성종10) 2월 13일 승지 이경동(李瓊仝)이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이 전에 이미 찬집되었으나, 근자에는 《화제방(和劑方)》을 즐겨 쓰기 때문에 행해지지 않습니다. 또 우리나라 사람이 찬집한 《본초(本草)》에는 그 이름만을 적고 형상을 그리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알 수 없으니, 당본(唐本)에 따라 다시 찬집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그리하라’ 하였다.』
이런 대화가 있은 지 535년 만에 대구의 민간인 신전휘-신용욱 부자가 무려 17년이 걸려 《향약집성방의 향약본초》를 펴냈다.(2013.4.21 KBS 행복한 시니어).
가장 기뻐해야 할 사람은 이경동 후손들이다. 전주에는 △추천조대 △경동로 △추탄로 △황강서원 △신도비, 묘소, 성종만시비 등 이경동과 관련된 사적이 많다. 감동의 차이야 있겠지만 대구에서 나온 ‘이 책이 확실하냐?’ 물어 오기 바란다. 이경동 아호 ‘추탄(楸灘)’ 외에 다른 호 ‘평호(萍湖)’를 본 적이 있다[柳?墓碑文].
근래 발간된 《전주향교지》에 이경동 시호 ‘문평(文平)’이 실렸는데 집안에 시장(諡狀)이 없어 아쉽다.
경주김씨 족보 시법(諡法)을 보면 ‘문(文)’은 “박학다문(博學多聞:널리 배워 들은 게 많고), 민민혜례(愍民惠禮:은혜와 예로 백성을 가엽게 여김)”란 뜻이며, ‘평(平)’은 “집사유제(執事有制:일을 맡아 절제함이 있고), 법도개리(法度皆理:법도는 모두 이치에 맞음)”를 의미한다.
씨족에서 먼저 알고 남의 인사를 받아야 바른 순서이다.
전주최씨 집안에 《금감록(金鑑錄)》, 이색의 《금경록(金鏡錄)》이 있어 문화유씨 집안에 4대 기록을 묶어 위의 집안처럼 《금명록(金銘錄:가제)》을 펼쳐내자고 제의했으나 반응이 없다. 출판비를 낸다는 독지가가 있는데도.
《임하필기》에 봉상 생강 이야기가 나온다. ‘로컬푸드’ 큰 잔치 마당에 먹을 것만 차릴 게 아니라 ‘말’을 곁들여야 온전한 잔치가 된다.
봉동읍사무소를 거창하게 짓는데 봉동에 혹 지을 정자가 있다면 그 이름 ‘우주정(紆州亭)’, 혹은 ‘봉상루(鳳翔樓)’라 했으면 좋겠다.
“알아야 ‘면장(面長)’을 한다”는 말이 있는데, 요새 면장은 ‘면장(免墻)’으로 풀이하더라.
/이승철=국사편찬위/史料조사위원(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