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소복이 내린 아침 창밖을 보며 아내가 4살 된 아이에게 물었다. “별해야! 넌 이렇게 눈이 하얗게 오는 날이 좋아?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이 좋아? 아니면 햇볕이 쨍쨍 맑은 날이 좋아?” “응... 나는 눈이 좋아!” 아이는 엄마의 눈 속에 비친 하얀 눈을 보며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어린 시절을 보면, 날씨 때문에 내 기분이 영향을 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철저하게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비오는 날이면 양철지붕에 낙숫물 떨어지는 가락을 들으며 우수에 젖고, 눈 오는 날이면 정갈한 마음 한 조각, 나뭇가지 위에 쌓인 눈송이에 살포시 얹어 멋진 풍경을 찍고, 맑은 날이면 노래를 불렀다. 너무 날씨에 잘 적응한 탓에 기분을 바꿔가며 즐겨서일까? 누가 갑이고, 을인지 모를 권력 관계를 유지해 왔던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20년 넘게 모셔온 은사님 댁 벽에 걸린 족자에 적혀 있던 문구의 오래된 향기인지도 모른다. ‘환경에 순응하라. 순응하는 자만이 환경을 지배할 수 있다.’ 어쨌든 현재의 나에게 누군가 아이에게 했던 질문을 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웃는 날이 가장 좋다!” 곧 있으면 설날이다. ‘설날’은 ‘서는(설) 날’에서 왔다고 한다. ‘서’는 ‘셋 삼(三)‘에서 나온 말로 ’서울(서+울)’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사물의 ‘존재’ 또는 ‘성립(成立)’을 의미하는 말이다. 서로의 벽을 넘어서, 대립을 넘어서 중화의 제3의 성격을 내포한 말이 ‘서’, 말하자면 ‘셋’이다. 그래서 새해에 기준을 세우는 것조차 대립을 넘어선 조화와 융화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 ‘설날’이다. 또한 ‘셋’은 ‘새로움’이다. 새로움은 창조를 의미하지만 완전한 무(無)에서 유(有)로의 단순한 변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안정과 현재의 안정을 토대로 한다. 건강의 일선에서 바라본 새로움이란 과거의 생활습관과 가치관, 그리고 현재의 노력의 당연한 귀결의 다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찌 보면 새로움의 ‘창조’란 과거와 현재의 ‘꽉 찬 비움’이 아닐까? 또한 ‘셋’은 ‘셈’이다. ‘어쩔 셈인가?’ 하는 말처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판단을 묻는 것이다. 셋은 또한 ‘세다, 굳세다’ 하는 말처럼 힘을 내포한다. 따라서 단순히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신영복의 옥중 서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보면 지식은 ‘실천’에 의해 검증되지 않고, ‘실천’과 함께 발전하지도 않는 허약한 가설, 낡은 교조에 불과하거나 또는 실천과 유리된 관념의 그림자가 되기 쉽다고 하였다. ‘셋’은 어떤 사태를 옳게 판단하고 기획하며 또한 무리 없이 실천하는 능력까지 내포한 말이므로 ‘지혜’에 더 가까운 말이다. 새해에는 어느 스님의 말씀처럼 행복을 인생의 목적으로 두고 쫓아 다니지 않고 환경에 순응하여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즐기며 ‘꽉 찬 비움’을 실천하는 한해가 되기를 바란다. 특히 아이 넷을 둔 가장으로서 그리고 50명이 다되는 직원을 둔 원장으로서 직원들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픈 환자들에게 벽을 허물고 환한 미소로 다가가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재엽 =전주우리병원 원장
최종편집: 2025-06-24 10: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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