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어머니 구씨(仇氏)는 아들을 위해 여러 번 이사했다는데, 지금은 부모 위하여 이사 다닐 세상이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한다. 적은 식구 오전이면 모두 나간다. 학교로 직장으로… 이렇다 보니 편찮은 어른 모시고 먼 병원 찾아다니기가 어려우니 마음에 드는 마을 의원 곁으로 집을 옮겨 혼자 물리치료도 받고 약도 받아 오는 것이 가족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처서(處暑) 지난 어느 날 요통으로 고생하는 환자를 데리고 삼천동 모 한의원에 갔다. 진료 개시가 9시 반인데 너무 일찍 왔다며 반가워 하지 않는다. 몰랐다는 말과 함께 눈치만 살피는데 같은 소리를 또 한다.
‘아서라. 손님 귀한 줄 모르는 의원에서 무슨 효험 보겠는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벽마다 겉멋을 잔뜩 부려 위촉장, 표창장, 잡지 기사가 빼곡히 붙어있다.
얼핏 보기엔 대단한 의원 같으나 종업원 태도로 보아 정이 뚝 떨어져 진료를 포기하고 나왔다.
오던 길 전주 안행교 근처에서 보았던 한의원 간판이 생각 나 찾아갔더니 반갑게 맞는다. 자신을 들어내는 장식이나 자랑거리 없이 오직 평안함을 준다.
접수처 여직원이나 개업 6년차 젊은 여 의사와 종업원 모두가 친절하다. 보호자에게 차를 권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배려해 ‘안마의자’에 앉혀 전신 운동을 시킨다. 북쪽 창을 가린 천에는 “나눔과 섬김의 정신으로 참 의료를 실현하겠습니다.” 의원의 다짐이 쓰여 있다.
명함은 “사랑 중심, 나눔과 섬김의 박성희 한의원” 이렇게 간단하다. 약 봉투에 전화번호도 약도도 없이 일반 상용품으로 소박하다. 이런 의원 곁에 살면서 상담하면 허한 마음에 얹힌 불안감이 훌렁 사라질 것이다.
옛날에 ‘집 값’과 ‘인심 값’을 따로 처 주고 집 산 선비가 있었다. 지금은 전세 값, 월세 값에 짓눌린 서민들이 숨 가빠 헐떡거리며 겉병 속병 몽땅 들어도 병원이 멀면 초상나 부고장 돌릴 형편이다.
이런 사람들을 가까이 두고 망하는 병원과 의원은 무슨 까닭일까? 병 주고 약 주는 의사 절대 아니 된다. 가짜 환자 좋아하는 의사는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 병원·의원 제대로 알고 찾아가자.
인술(仁術)을 기억하라. 단방약도 몸에 좋은 것이 있단다.
/이승철=국사편찬위/史料조사위원(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