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 아니 그것은 충격이었다. 둥구나무에 무서리가 내리던 날 우리 마을에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노니 꽃’ 한 송이가 날아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앞 다투어 나아가 그 꽃을 얼싸 안았다. 순백의 그 꽃은 일 년 내내 아니 평생토록 피어 향기를 발산할 것이라고 하였다. 마을의 촉매제가 될 것이라 하였다. 꽃 이름은 ‘월남 댁’이라 지어졌다. 월남에서 시집왔다 해서 그렇게 지어진 것이다. 우리도 왜 시집온 아낙의 친정고을 이름을 따 고산 댁, 봉동 댁 하며 부르지 않았던가. 한국 국적 취득 때 얻은 ‘전지현’이란 이름이 있는데 왜 그 이름을 안 불러주는지 모르겠다며 볼 멘 소리를 했다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월남 댁은 그렇게 우리와 하나가 되었다. 동고동락의 꿈같은 세월이 3년쯤 지났을 때이다. 그 꽃이 토종닭 전문 식당에 취업을 하였다. 뜻하지 않은 사건에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어떤 남정네들은 환호하기도 하였다. 그중 한 사람은 이틀간 네 끼를 닭만 먹었더니 입안에서 구린내가 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다른 이는 천원 권 한 장과 만원 권 한 장을 소주잔에 감아 들고서 전해줄 순서를 기다린다 하였다. 식당은 지난여름에 닭을 수천마리나 팔았다고 소문이 났다. 닭 잡는 기술이 다른 사람 세 몫은 한다며 주인 입이 귀에 걸렸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나는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노니 꽃을 생각하면 슬퍼지는 이야기가 있다. 몇 년 전에 나는 베트남으로 노니 열매를 구하러 간적이 있다. 항암과 면역력 강화에 좋다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여행사를 따라갔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주스나 정제로 된 제품을 구할 수 있지만 현지에서 확인하고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달려 든 것이다. 울창한 밀림 속에서 만난 노니는 그저 우리나라의 뽕나무를 연상케 하는 평범한 나무였다. 감자처럼 울퉁불퉁 못생긴 열매, 그리고 찔레꽃이 연상되는 여섯 가닥 꽃잎을 보면서 참으로 정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열매를 키우며 자라나는 꽃은 한 송이가 시들면 다른 꽃망울들이 활성화되는 식으로 연이어 피어나서 모진 생명 줄이 끊어지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일하는 소녀가 바구니에 열매를 담아왔다. 순간 덥석 집으려드는 손길들이 포개져서 불똥이 튀었다. 가공을 해야 먹을 수 있다는 가이드의 고함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열매는 입마다 한가득 씩 채워지고 있었다. 내 손에는 노니 열매가 쥐어져있지 않았다. 이때 문득 ‘노니 꽃을 보면 눈물이 난다’ 고 노래한 어느 시인의 낯 선 얼굴이 그려졌다. 어쩌면 그이도 나처럼 서럽게 노니 꽃을 찾아 여기까지 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니나무 아래 서서 솔방울 같은 저 열매를 아린 마음으로 올려 보았을 터이다. 꽃이 어떻게 보였을지 궁금했다. 남들은 노니를 재미로 먹는다지만, 그이와 나는 약으로 복용해야 했기에 더욱……. 화풀이 하듯 열매와 차를 배낭가득 사가지고 돌아왔다. “신랑이 잘 해줘요?” “예, 맨 날 업어줘요.” “식당 끝나고 집에 늦게 가는데, 밥하고 빨래는 누가 해요?” “시어머니요.” “뭐가 제일 재미있어요?” “TV요.” “식당 일 힘들지 않아요?” “좋아요.” 또박 또박 답하며 검은 눈동자를 굴리는 꽃의 모습은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나도 천만 원을 쥐어준 적이 있다. 신랑은 접신이 되었노라고, 시어머니는 치매라고, 집에 늦게 가니 TV에서는 토론이나 다큐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차츰 사는 재미를 잃어간다고 누군가가 귀 뜸 해 주었기에…. 나는 술잔에 싸지 않고 맨손에다 꼭 쥐어주었다. 지난 추석에 다문화센터에서 그 꽃을 만났다. 친정에 추석선물도 보내고 가족 용돈도 매월 10만원씩 보내고 있다며 무척이나 상기되어 있었다. 코리아드림을 찾아 우리 품에 안긴 저 새댁이 마음으로는 울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숨 죽여 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목이 메었다. 토종닭이 전부일지도 모를 각박한 일상 속에서도 천진한 미소를 잃지 않는 천사와도 같은 저 꽃이 이 땅에서 어떤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앞으로 나는 노니 사러 남국에 가지 않을 것이다. 월남 댁이 눈에 밟힐 것 같아서이다. 소망한다. 시어머니와 신랑의 몸이 빨이 낫기를, 천만 원이 지닌 의미를 빨리 파악하기를, 유선 방송을 통해서라도 재미있게 텔레비전에 빠져 들기를…. 설날이 기다려진다. /이승수= 완주우체국장
최종편집: 2025-06-24 09:5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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