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요 머리에 뿔이 두 개 돋쳐있고 뒤에는 기다란 꼬리가 달려 있으며, 네 발로 걸어 다닙니다. 아주 옛날 옛적 할아버지 때부터 그랬나 봐요.
그런데 사람들은 재주가 참 좋아서 두 발로도 잘도 걸어다니며 손이 둘 있어서 별별 재주를 다 부립니다.
나의 머리에다 억센 굴레줄을 얽어매고, 내 아픔을 생각이나 하는지 내 코를 가로질러 무자비하게 꿰뚫어 코뚜레를 채워서 굴레줄에 동여매는가 하면, 질긴 밧줄로 고삐를 매어 나를 꼼짝못하게 해놓고 “이랴~ 자라~”하면서 몰고 다닙니다.
코가 저리고 아프지만 어쩔수가 없어 참아야지요. 내가 사람보다 힘은 좀 셀 것 같은데 말입니다.
나는 이것이 싫어서 “음메~”하는 소리밖에 낼 수가 없어요.
사람들이 내가하는 이 소리를 귀담아 들을 리가 없지요. 설령 알아들었다 하더라도 막무가내 일 것입니다.
나는 이를 참고 견디어냅니다.
왜냐고요. 나를 배불리 먹여주고 따뜻하게 재워주니까 이 위에 바랄것이 더 있겠어요!
그저 사람들이 하자는대로 따르고 있지요. 그래야만 마음이 편하니까요.
한여름 뙤약볕에 햇빛이 쨍쨍 내려쪼일때 쟁기에 멍에줄을 채워 논밭을 갈아댈때는 등허리에 땀이 주욱-죽 흘러내려도 숨이 콱콱 막힐 지경이어도 이를 참으면서 멍에줄을 힘껏 당기면서 ‘이랴~’하면 이리가고, ‘자라~’하면 저리갈 수밖에 없어요.
이놈의 멍에줄과 고삐줄 때문에 말입니다.
이런일들이 몸에 배어 버렸습니다.
멍에 자리가 해어지다 못해 멍이 들어 뚝살로 굳어 버렸습니다.
해가 서산에 걸리면 온종일 채워졌던 멍에줄에서 풀려나 먹고 싶었던 밭 가장자리에 자라난 풀을 맛있게 뜯어 먹습니다.
‘인종(忍從)’ 참고 견디는 일. 이는 옛날 할아버지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참고 견디어내는 습성이 대대로 이어지는 천성(天性)인가 봅니다. 이 천성은 버릴수가 없겠지요.
피곤한 하루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배불리 먹었으니 따스한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잘 모르겠어요. 이상해요. 사람들은 두 손으로 별별것을 다 만들어내면서도 서로가 말싸움을 하는 것 같기도 하며, 이따금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머리에 빠-알간 머리띠를 잔뜩 졸라매고서 깃발을 높이 들고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무엇 때문인지 길을 막아서기도 하여 자동차들이 지나가지 못하고 늘어서기도 합니다.
무엇을 바라는 외침인가 봅니다마는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구태여 그렇게 해야만 되는건가 싶어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람들은 참 재주가 좋고 꾀도 많아요.
그게 부럽지만 나는 못해내니 어쩔수가 없어 사람들이 하자는대로 참고 따르고 있지요.
나를 배불리 먹여주고 따스하게 재워주는 보답이겠지요.
/전우봉 (83·화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