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나면서부터 움직이고 자라면서 ‘일’했다. 중국에서 일을 ‘사(事)’, ‘업(業)’, ‘역(役)’이라하며, 영어로는 ‘work’라 쓴다.
어떤 사전을 보니 ‘일’을 열네 가지로 쉽게 풀어 설명했는데 “성교를 점잖게 이르는 말이다”까지 나온다.
우리들 이야기 중에 흔히 “저사람 인사가 ‘일’이여!” “밥 먹고 낮잠 자는 게 ‘일’이랑께!” 이런 말을 자주 쓴다.
누구나 능력의 차이야 있지만 죽을 때까지 일하며 산다. 문제는 ‘일의 대가(代價)’이다. 옛날엔 ‘대가’가 없었단다.
초상 나면 지붕에 흰 옷가지가 던져진다. 금방 동네 사람들이 모여든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사잣밥 짓기 △호상 서기 △부고 쓰기 △차일 치기 △멍석 깔기 △그릇 빌려오기 △부고장 쥐고 달려가기 △산에 가 통나무 베어오기 △장보러 가기 △상복 만들기 △상여 짊어 오기 △상장(喪杖) 만들기 △혼백 접기 △술 가져오기 △모닥불 놓기 △팥죽 끓이기 △염하기 △동아줄 틀기 △상여 메기 △만장 들기 △묫자리 파기 △마당 치우기 △빨래하기… 좀 늦으면 서로 ‘먹통’ 소리를 지르며 일을 해댄다.
그렇다고 대가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또한 대가 처 주지도 않는다. 오직 고마울 뿐이다. 마을 사람들은 ‘일’이 있으니 ‘일’을 했을 뿐이란다. 이런 나라에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부터 차차 일의 대가가 생기고 ‘노동’에 ‘값’이 매겨졌다.
지금은 돈을 줘야 ‘일’하고, ‘돈’받기 위해 작업한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나는 것은 돈이 많아도 일을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날 때부터 일꾼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하다는 사람이 많다. 거개 일하고 싶은 사람이다. 자본주의를 나무랄 것도, 과거만 생각할 게 아니라 상생의 타협점을 찾으면 모두 좋다.
옛날에 중매 서고 돈 받은 일 없었고 사관(四關)침이 공짜이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란다.
김장철 우리 마을 아낙네들 모여 김치 담고 품삯 받아가는 여인 없다. 김치 포기 왔다갔다 정이 담뿍 담겨 오갈 뿐 이다.
서로 평생 고맙다 치하하며 자랑함이 또한 ‘일’이란다. 공짜 일 잘하는 사람 곁에 살면 행복한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일중독 조심해야 한다. 먼저 갈 수 있다. 일 조심하자.
/이승철=국사편찬위/史料조사위원(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