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 들길에서 해가 저물어/ 둘 셋이 어깨를 쩌(껴) 가면서/ 노래 부르며 돌아가는 길/ 어린 동무의 이 생각 저 생각/ 아아-그 뉘가 고향을 잊을 손가(일부 현대 표기)』 1949년 1월 전주출신 李鎭南(이진남)이 일본에서 뼈에 사무치도록 그리운 가족과 고향을 기리며 보낸 편지 가운데 있는 시이다. 남들은 해방이라며 환국하는데 이진남은 1945년 10월 돈 벌겠다며 일본에 들어갔고 이 편지 이후 소식이 없다. 소생은 오직 남매 독자 國淳(국순)은 아버지 찾아 현해탄을 건너 北海道(홋카이도)까지 수륙 9만 리를 돌며 주일한국대사관과 거류민단에 알아 달라 사정했으나 대답은 가볍게 ‘모른다’는 이 한 마디. 이진남은 전주공립농업학교(현 전주생명고) 29회 졸업생으로 미남이며 공부는 물론 마라톤까지 잘 했다. 사진과 유품으로 보아 신교육을 받은 마전 서곡 전주이씨 가운데 유별나게 담대한 지식인임이 확실하다. “조선 젊은이들은 어서 넓은 저 세계로 튀쳐나와야 나라가 발전한다”고 절규한 시대관이 대우그룹 김우중씨보다 30년을 앞선다. 국순은 아버님 손때 묻은 유품 《恩賴[은뢰:받은 은혜(1937년11월):朝鮮神宮御鎭座十周年記念(조선신궁어진좌십주년기념)]》과, 1935년대 한국에 주둔한 일본군 병력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榮光に 輝:湖南朝鮮師團對抗演習記念寫眞帖(영광을 빛냄:호남조선사단대항연습 기년사진첩)》과, 1930년 4월에 나온 《全州公立農業學校第二十周年記念:전주공립농업학교 제이십주년기념》사진첩을 쓸어 앉고 눈시울을 적신다. 근 70년 홀로 사신 어머님(박윤순 92)이 계신다. 동갑이신 아버님이 살아오시거나 소식만이라도 들리면 소 잡아 잔치하며 펄떡펄떡 뛰어보겠단다. 함독하고 떠난 돈 실컷 쓰시라며 지갑 활짝 열어 제치고 손자 손으로 지은 보약 올리며 서곡 당산목에 무병장수 비는 게 소원이란다. 아버지께 보여드릴 이력서와 각자 도장까지 받아 꾸며놓은 자료가 9만리 장천 딴 세상 것이 아니 되기를 바란다. 책 보따리 싸들고 소설 절기 짧은 해 그늘 아래 사모곡 『꽃피는 들길에서…』를 부르며 물 바람 숲 황방산 진한 향기 따라 묻어올 좋은 소식을 기다린다. /이승철=국사편찬위/史料조사위원(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09:4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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