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모처럼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 볼 때가 있습니다. 뽀로로 인형을 만지며 밥도 같이 먹고 대답 없는 대화(?)도 하며 까르르 웃기도 합니다.
소꿉놀이도 기꺼이 같이 합니다. 문득 ‘왜 어른이 되면 저처럼 생명이 없는 나무와 풀과 인형들과 대화를 할 수 없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상대성 이론’처럼 고정되어 있는 사물도 모두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저렇게 대화를 할 수 있는 반면, 어른들은 변화가 없어 한 곳에 서 있으니 사물이 움직여 보일 리가 없겠죠.
하지만 어른들은 변화가 없는 데도 항상 생활이 너무 바빠 틈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삽니다. 바빠질수록 나무와 풀 뿐만 아니라 같이 사는 사람들, 가족과도 대화가 줄어듭니다.
남과 하는 이야기(대화) 뿐 아니라 나 자신의 이야기도 말입니다. 그래서 바쁘기는 한데 또한 심심합니다. 재미없고 허전하고 우울해하기도 합니다.
행복이라는 측면에서 여성의 평균 수명이 남자보다 약 10년 더 긴 이유를 ‘리추얼(의식)’으로 설명하는 분이 있습니다.
습관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반복되는 행동 패턴을 의미하는데 여기에는 ‘의미부여’의 과정이 생략되어 있는 반면, 리추얼은 ‘사랑받는 다는 느낌’, ‘가슴 설레는 느낌’등의 정서적인 반응과 의미부여 과정이 동반되는 것이라 반복되는 행동 패턴이라 하더라도 의미가 다릅니다.
리추얼이 다양한 사람은 삶이 풍요롭습니다. 소소한 일에도 재밌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부부만 보더라도 남편의 리추얼은 대게 아내와 연관되어 있는 반면, 아내의 리추얼은 남편이 없어도 가능한 것이 아주 많고 훨씬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리추얼이 많은 여성이 더 행복하고 더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우리의 삶이 재미없는 이유는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따져보면 그렇다고 누가 시켜서 강제로 하고 있는 일도 없습니다.
어떤 사회학자는 ‘우울한 느낌’에 대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사회가 예전의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한 것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을 해야 한다’, ‘~을 해서는 안 된다’ 하는 당위나 책임을 강조하여 개인이 복종을 하는 입장에 놓여있기도 했습니다.
전통이 그러했고 사회의 도덕과 윤리가 그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것과 다른 것들은 ‘비정상적인 것’이고 ‘이질적인 것’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탈 이념화, 탈규제의 경향이 강해지면서 모든 가치와 판단이 ‘비정상적인 것,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좀 나와 ‘차이’ 가 나는 것으로 변모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정상과 비정상을 갈라놓은 장벽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개인은 ‘자신을 경형하는 기업가’이며 ‘성과 주체’가 되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에 부응하려고 애쓰다가 지쳐버리고 맙니다. 때문에 규율사회의 부정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지만 반면 성과사회의 부정은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 낸다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사회가 과도한 성과를 중요시하는 시스템이 되어 개인은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는 상태에서 스스로 자신을 ‘노동하는 동물’로 착취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철학을 포함한 인류의 문화적 업적은 깊은 사색적 주의를 포함한 ‘깊은 심심함’에 힘입고 있음을 생각할 때 단순히 말로 하는 이야기가 주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심심함을 참지 못하고, 무료하면 마음의 평정을 읽고 안절부절 못하며 돌아다니거나 이런 저런 다른 활동을 해보는 과잉 행동, 자나 치게 활동적인 현대 생활이 오히려 스스로를 지치게 하고 낙오시키고 정서적 반응인 ‘리추얼’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찬란한 문화 또한 깊이 사색하고 주의할 수 있는 환경, 말하자면 ‘사색하는 삶’이 필요하며, 사색하는 삶에는 그 무엇보다 눈으로 하여금 깊고 사색적인 주의의 능력, 오래 천천히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게 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함을 고려할 때, 오늘처럼 모든 업무와 약속을 뒤로하고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집에서 심심하지만 가족과 정서적인 교감의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 요즘에 말하는 ‘느리게 사는 것’에 대한 그럴 듯한 해석을 넘어서 내 자신에 대한 진정한 이야기 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김재엽 =전주우리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