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란 가을 국화가 참 아름답습니다.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에 저절로 눈이 갑니다. 가을볕에 잘 말린 것들은 모두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길가에 핀 코스모스와 가을 국화는 물론이고, 갓길에 말려 놓은 고추며, 나락들도 제각각 고운 빛깔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 참으로 가을이 왔나 봅니다.
며칠 전 햇살 좋은 오후 전북대학교 앞에서 꽃집을 하는 친구를 만나러 갔습니다. 늘 곱고 달콤한 꽃향기가 문을 여는 순간 퍼져서 행복함을 그대로 전해주니 이것이 제가 꽃을 찾는 이유이지 싶습니다.
이 날도 기분 좋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활짝 핀 니시얀시스와 수국으로 장식한 화려한 꽃바구니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너무 예쁘고 황홀해서 친구에게 왠 거냐고 물었더니 야외무대 장식에 쓸 꽃들이라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한참을 바라봐도 질리지 않고 예쁜 꽃들이라 차마 시선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오랜만에 눈의 호사를 한참 누리고선 제가 말했습니다.
“꽃들이 너무 예뻐서 시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들이 시들고 죽어버린다고 생각하니 정말 아쉽네.”
그러자 친구가 살짝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살아있으니 시드는 거야.”
“예전에 어느 전시회장에 간 적이 있는데 조화들로 장식을 해놨더라, 그런데 죽은 꽃들만 보고 온 것 같아서 기분이 즐겁지 않았어.”
사람의 인생을 계절로 표현한다면 어떨까요? 이리 보아도 예쁘고 저리 보아도 예쁜 아이들은 만물이 생장하는 봄의 기운이 분명하고, 하늘 높이 쑥쑥 커나가고 푸른 잎들이 무성한 여름은 분명 청년의 계절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40에 들어서는 나는 여름이 끝나가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 즈음일까요?
아름답고 화려한 잔치 같았던 봄과 여름을 지나고 다가올 혹독한 추위를 두려워하며 나뭇잎을 하나 둘 떨어뜨려야 하는 가을이 어떻게 보면 참 서글픈 계절 같기도 합니다.
40이라는 나이도 이 계절처럼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로 돌아가고만 싶고 다가올 노년에 대한 두려움이 불현듯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하듯 세상은 자꾸만 젊어지라고 합니다. 주름을 없애는 시술들, 넘쳐나는 화장품 광고들, 성형에 대한 과도한 욕구들을 보고 있으면 이 사회에서 가치 있는 것은 젊음, 아름다움 같은 것들뿐인가 해서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지어지기도 하고, 한 편 문득 쳐다본 거울 속에서 발견한 눈가주름 하나에 한숨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렇게 아름답던 봄, 여름이 지나고 가을마저 가버려 마침내 흰 눈이 내려 온 세상을 덮는 혹독한 겨울이 오면 모든 것이 끝내는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요? 나뭇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앙상하게 추운 겨울바람을 맞고 있는 나무들은 이제 쓸모가 없어져 버린 걸까요?
꽃들처럼 사람도 살아있으니 시드는 것입니다. 한때는 아름답고 젊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앞으로 조금씩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참 중요합니다. 살아있으니 늙는 것입니다. 맑고 하얗던 피부 밑으로 조금씩 생기는 주름은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 혹은 슬프고 힘들었던 순간순간들이 만들어낸 내가 걸어온 인생길일 것입니다.
튼튼하고 강하던 근육들이 차츰 약해지고 쇠약해지게 되면서 부터는 약해진 나를 부축해주는 다른 이의 손길을 감사히 받아들일 마음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나뭇잎을 떨어뜨리며 겨울을 준비해가는 나무들의 지혜처럼 여름시절 아름다웠던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지듯이 가볍게 마음을 내려놓고 나이듦을 조금씩 준비해가고 싶습니다.
한때는 세상 무서운 것이 없기도 하고, 또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고,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다고 믿었던 적이 있습니다.
한여름 내리쬐는 태양빛에 쑥쑥 커나가는 나무들처럼 한없이 이 순간만 있을 거라 믿었던 적이 있습니다.
도전해볼 수 있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20대는 이런 믿음이 없으면 오히려 사는 게 재미없고 맥이 빠질 것 같습니다.
자신감 넘치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기에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젊음은 젊음답게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가득 안고 자신 있게 세상에 나아가야 합니다.
여름이 지나고 찾아오는 이 계절은 화려함이 성숙함으로 변해가는 시기, 푸른 잎이 자신만의 다양한 색깔 옷으로 갈아입는 시기입니다.
세상에 도전하고 헤쳐 나가면서 배우게 된 겸허한 지혜들이 내면을 채우고 성숙시켜 자신만의 색깔과 향기를 만들게 되는 계절,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계절,
바로 가을임에 분명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가을이 감사하고 아름답습니다.
/서소영= 약사(이서면 하나로약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