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누런색으로 타들어가는 들판이 벌써 한해 땀의 노력이 거두어지는 시기 가을입니다. 하늘이 높아지고, 피부에 와 닿는 바람의 느낌이 신선하고, 하늘거리는 고추잠자리며 풀 입속에 살짝 숨은 메뚜기와 코스모스 핀 가로수길이 더없는 정겨움을 안겨주고 드문드문 떠다니는 하얀 뭉게구름 사이로 아주 편안하게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의 색이 무르익어 곱네요. 헌데! 이런 풍요로움과 함께 다가오는 쓸쓸하고 씁쓸한 느낌은 어쩐 일일까요? 사계절 중 유독 가을만큼은 상반되는 두개의 이미지를 공유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결실을 거둬들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쓸쓸히 저물어가는 것인가 봐요. 일요일 어제는 모처럼 빈방에 누워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보며 문득“가을은 부모의 계절”같다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일생동안 가꾼 모든 풍요로움을 말없이 뿌려주고 낙엽이 되어 한줌의 재로 저 뒤편 넘어 저물어지는 느낌! 그 낙엽의 주름이 마치 어머니의 골 패인 이마의 주름 같고 쭈글 거리는 손등 같았어요. 어머니! 달팽이는 자신의 껍질 속에 알을 낳고, 어린 새끼들이 하나의 건강체로 성장하기 까지 자신의 몸을 자식들에게 양분으로 내어주고는 나중에는 빈 껍질이 되어 물결에 쓸려 다니다가 사라져 버린 데요. 제 모습이 꼭 새끼달팽이 같고, 어미 달팽이가 어머니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세상에 태어나 제게 큰 행복이 있다면 하나는 어머니가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어머니 같은 분의 아들로 선택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마음 아파하고 힘들어 할 때면 저의 뒤켠에 서서 제가 모르게 저보다 더 마음아파 하시는 것을.... 당신이 그토록 애지중지하셨던 손녀딸 아녜스를 영원한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마음 둘 곳 없어 하시던 아픔의 그 순간순간들… 더더욱 큰손녀 유리안나와 둘째손녀 세실리아를 수녀님으로 보내고 상심하시던 모습. 이런 모든 것들을 들킬 새라 밤마다 이불속에서 어깨 들썩이며 숨죽여 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의 항상 변함없는 격려와 믿음은 제게는 큰 의지가 되고 저를 지탱해주는 힘이 된답니다. 제가 고통으로 힘들어 지쳐할 때 어머니께서는 그냥 편안하게 일상을 들려주는 그런 작은 목소리로 “그 고통의 실체를 확인하는 습관과 더 낮아지는 겸허”를 가르쳐주시며, 정신의 지주가 되어 주실 때 저는 깨달음의 힘이 생겼습니다. 어려움이 겹치고 또 겹쳐 제가 많이 힘들었을 때 있었지요. 거나하게 취한 채 대문에 들어선 어느 늦은 밤 방문 틈사이로 두개의 촛불 앞에서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등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저를 위한 기도였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조용히 제방으로 들어가 침대 시트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기억하실 거예요. 아주아주 오래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해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이른 봄날 양지바른 초가지붕 처마아래서 감자 씨를 쪼개시면서 아직은 늦추위에 코 밑은 지저분하고 손은 꽁꽁 얼은 채 학교에서 돌아오는 저를 어머니는 당신 무릎에 앉히시고는 꼬옥 안아주시며 말씀하셨지요. “살아서나 죽어서나 우리아들 엄마가 지켜줄게 영혼이 되서라도.....” 그때 어머니는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더 큰 든든함을 주셨습니다. 넉넉치 못해 가난에 쫓겨사는 우리아이들이 힘들고 어렵게 살고는 있지만 그래도 고통스럽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착한 마음의 어머니! 살아온 지금까지 미거한자식들 한번도 상처주지 않고 86년이란 긴 세월에 2남 2녀를 낳아 정성껏 키워 제몫을 다하게 해주신 어머니 ! 훗날, 이런 어머니가 떠나신 후를 생각하면 자신이 없고 한편으로는 몹시 겁이 납니다. 어머니께 해드리고 싶은 일이 수없이 많은데 그것이 저의 뜻대로 되질 않고 능력 부족함을 알고 있지만 우선 아들걱정에서 벗어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혈압과 심장병으로 많이 고생하시는 것도 제 탓인 것 같고 요즘 들어 측은히 저를 보시는 눈빛도 저의 부족한 탓인 것을 잘 알기에 죄송하기만 합니다. 새끼달팽이처럼 여태껏 어머니의 양분을 다 먹어 버렸는데 점점 빛바랜 껍질이 되어가는 어머니 앞에 전 아무것도 해드릴 것이 없네요. 그런데도 어머니는 제 마음 다칠까봐 “든든한 아범이 있어서 난 언제나 행복 하지” 하시며 헤아려 말씀해 주셨지요. 참으로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모든 것 쏟아 제게 다 주시고 뒤켠에 서서까지 지켜주시는 어머니! 주위사람들은 저를 무척 부러워한답니다. 충청도 양반고을에서 전수하신 전통 폐백솜씨나 맛깔스런 음식솜씨며, 그리고 자식의 실수를 무조건 감싸주시는 심성 고우신 어머니를 말입니다. 이제는 저도 제 자식들에게 어머님 같은 부모가 꼭 되겠습니다. 또 어머님처럼 하느님 말씀 따라 신앙을 생활화하면서 풍요로운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어머님께서 그리하셨듯이 저도 저의 가진 것 들을 자식들에게 쏟아주고 마지막까지 기도해줄 수 있는 그런 어미달팽이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살겠습니다. 어머니! 결실을 거둬들이고 다시 쓸쓸히 저물어가는 가을 이 계절에 이런 것이 하느님의 이치인 것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착한 어머니! 어머니의 바라심이 꼭 이뤄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13년 10월 삼례신용협동조합 이사장 김 영 두 (로마노)
최종편집: 2025-08-14 03:18:24
최신뉴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오늘 주간 월간
제호 : 완주전주신문본사 :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봉동읍 봉동동서로 48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전라북도, 다01289 등록(발행)일자 : 신문:2012.5.16.
발행인 : 김학백 편집인 : 원제연 청소년보호책임자 : 원제연청탁방지담당관 : 원제연(010-5655-2350)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학백
Tel : 063-263-3338e-mail : wjgm@hanmail.net
Copyright 완주전주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