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입니다. 하늘이 파랗게 높아지고 나뭇잎이 물들기 시작하면 저마다 마음 한 켠 찬바람에 외로워지기도 하고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온기를 더 소중히 느끼게 되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가을을 노래한 시들도 더 많은가 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한 시인은 가을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한 두 잎 나뭇잎이 / 낮은 곳으로 / 자꾸 내려 앉습니다 /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 그대여 / 가을 저녁 한 때 /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 사랑은 왜 / 낮은 곳에 있는지를 연탄재 하나를 바라보면서도 과거의 뜨거웠던 사랑을 기억해냈던 시인의 감성이 그대로 전해져 가을 길을 걸을 때면 도로변에 떨어져 있는 나뭇잎들을 하나 하나 눈에 담곤 합니다. 혹시 학교 다닐 적 배웠던 내용을 기억하시나요? 가을이면 하나 둘 떨어지는 낙엽을 과학 시간에는 나무가 추운 겨울동안 생명을 지탱하기 위한 보호작용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가을이 되면서 태양 빛이 약해지고 기온이 내려가면 잎의 잎자루와 가지가 붙어 있는 부분에 떨켜라는 특별한 조직이 생겨나서 겨울철 부족해지는 수분을 잃지 않기 위해 잎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단풍이 드는 이유도 원래 나뭇잎에는 초록색뿐아니라 노란색, 빨간색 등 여러 색소들이 함께 있는데 여름철 강한 태양빛으로 활동이 왕성했던 엽록소 때문에 다른 색깔은 보이지 않게 되고 가을이 되면서 이 엽록소의 활동이 줄어들고 멈추게 되면 여러 색소들이 상대적으로 눈에 띄게 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과학의 눈으로 보면 자연은 정확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새롭게 발견되거나 연구가 진행되어 새로운 사실들이 추가되고 발전하지만 과학적 사실은 정확해야하고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득 세상을 과학적으로만 보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사회현상을 과학처럼 한 가지 정답만 놓고 보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물음을 던져 보면 어떨까요. 현대 사회는 갈수록 다양하게 분화되고 발전된다고 하지만 요즘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같은 생각, 같은 행동을 알게 모르게 강요당하는 듯 보이는 건 저 혼자만의 우려일까요?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서 안도현 시인은 낮은 곳으로만 향하는 나뭇잎들이 사랑의 모습으로 느껴졌었나 봅니다. 다른 어떤 시인은 푸른 가을 하늘을 향해 펼쳐져 있는 나뭇잎들을 한 칸 한 칸 꽉 채워진 원고지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나뭇잎이 하나 하나 떨어지는 모습을 원고지에서 글이 비워져 파아란 종이만 남게 되는 것이라 느꼈나봅니다. 저는 바스락거리는 낙엽 길을 걸을 때 마다 가을볕에 잘 말려 덮고 자는 이불을 떠올리곤 합니다. 단풍은 나뭇잎의 색소들의 비율이 변하는 과정이고, 한 겨울 내리는 눈은 얼음결정이라는 과학적 사실만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이 세상이 많이 삭막할 것 같습니다. 과학은 그 나름대로 세상에 기여하는 역할이 큽니다. 인간과 자연을 이롭게, 생명을 소중하게 하기 위해서 과학적 사실들은 필요하고 더욱 발전해야 하겠지요. 이런 의미에서 과학적으로 옳다 그르다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옳다, 그르다 라는 잣대로 사람들과 이 세상을 바라본다면 세상은 더 위험해지고 각박해질 것입니다. 시인은 옳다, 틀리다 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만화경처럼 다양하고 아름다운 모습들 입니다. 붉은 감잎 하나 날아오면 ‘오매 단풍 들겄네’ 하면서 수줍어하는 누이의 모습(김영랑시 오매 단풍 들것네)을 떠올리기도 하고, 창가에 떨어진 노오란 은행잎 하나를 책갈피에 끼우면서 어릴 적 함께 홍시 먹던 친구들이 그리워지기도 하는(이해인 시 은행잎 가을) 것이 시인의 눈을 통해 바라본 가을일 것입니다. 가끔 정답만 가치 있는 것이고, 지식과 정보가 중요한 자산이 되어버린 것 같은 현대 사회에 조금은 다르게 세상을 보는 시인의 눈과 시선이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닌 가하고 생각해봅니다. 저 사람이 한 말은 틀렸어. 사실이 아니야 라고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아~ 나하고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구나, 나와 다르지만 저 사람도 나도 행복해지길 바래’ 라고 말할수 있는 평화롭고 사랑 가득한 마음을 이 가을 시인을 통해 배우고 싶습니다. /서소영= 약사(이서면 하나로약국)
최종편집: 2025-06-24 10: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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