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식, 육식, 잡식 각각 다른 식성이 있어 먹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옆 집 박 서방이 고향 방문 때 안부 물으면 사랑방, 경로당, 정자나무 아래 쉼터 가릴 것 없이 잘 차린 비싼 음식 실컷 먹고 신나게 산다는 자랑을 늘어놓는다.
한 상 네 사람분이 10만원, 여기에 양주와 여자 얘기를 곁들이며 막판엔 팁을 넉넉하게 주었다는 염문까지 털어놓는다.
▲윗집 김 서방은 서울 부자이다. 고향에 오는 경우 “아주머님 고들빼기김치는 천하일품이었는데요.” 하면 “아! 그래. 잠깐만 기다려…” 벌떡 일어나 밥상을 푸짐하게 차려내고 갈 땐 그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를 싸 보낸다.
소탈한 김 부자 소문이 마을 안에 쫙 퍼지자 만나는 이마다 “우리 집 칼국수 맛 좀 봐.”, “토종닭 잡아 놓을 테니 먹고 가지” 마을 사람들의 진심어린 인사와 대접이다.
박 서방은 ‘고급만 먹고사는 위인’이란 인상이 주민 머릿속에 꽉 박혀 그 앞에선 밥 이야기를 꺼내기조차 않아 늙으막까지 죽 한 그릇 못 얻어먹고 죽었다.
“밥을 줄 바엔 배고플 때 주고, 남은 밥 있거들랑 쉬기 전에 줘라.” 중암 김춘회 구호이다.
“수저 하나만 더 놓아” 인정 넘치는 한국인이 즐겨 쓰는 말이다.
“콩 한 쪽도 나눠 먹어야지” 가슴 뜨거운 말씀이 내려오는 마을에서 죽 한 그릇 못 얻어먹었다면 입방정 때문이었다.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 있으면 아니 된다.” 대구서씨 가문의 신조이다.
전라도 관찰사 서유구의 고구마 보급은 우연이 아니었다. 배고픈 사람 보지 못하는 명문 집안 출신이기 때문이다. 농업관련 기관에서는 팻말이라도 세워 그 공을 기려야 한다.
명절이면 아들집에 선물이 전국에서 몰려들고 영덕 대게 상자가 특송 되는데 “어떻게 요리하나?” 묻지만 정작 ‘게’ 냄새 맡아 본 이웃이 없단다.
공것 혼자 먹으며 웬 자랑인가. 약 올리자는 건가.
앞으로 명절에는 어려운 집에 쇠고기나 돌리고 나서 이런 자랑 실컷 하이소. ‘쓴 소리’가 아니라 ‘바른 소리’이다.
/이승철=국사편찬위/史料조사위원(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