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을 앞두고 우체국에 택배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다. 예년에 비해 층이 훨씬 높아졌다. 경기 운운해도 선물하는 사람 마음은 별개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택배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그 중에는 접수창구에서 만난 한 노부부의 이야기도 있다. 두 분은 나란히 손잡고 서서 포장상자가 저울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며느님께 보내시나 봐요?”
“…….”
두 분은 내 질문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눈금이 32kg을 가리켰다.
“2kg 초과예요. 둘로 나누거나 덜어내셔야 해요.”
내가 듣기에도 젊은 직원의 말이 냉정하다 싶었다. 노부부는 아무 답이 없었다. 직원이 되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할머니가 나섰다. 상자를 열고 사과 몇 개를 꺼냈다. 2kg을 빼려면 제법 많이 들어내야 할 성싶은데…….
다시 할머니 손이 상자 속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더듬으신다. 물건이 쉬 따라 나오지 않는다. 그대로 두고 봐야할지 난감했다. 할머니는 끝내 내용물을 꺼내지 못했다.
“못혀, 나는 못허것어.”
접수하는 직원이나 나나 말없이 시선을 떨굴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 번 중량과 요금에 대하여 안내하고 포장을 둘로 나누기로 했다. 내용물을 보니 배추김치, 파김치, 깍두기, 콩, 참깨, 사과 등이 들어있었다. 대개 이렇게 백화점식으로 안 보내는데 어떤 경우일까? 반갑지 않은 예감이 들어 여쭤봤다.
“추석 때 들고 가게 하시지 그러셨어요?”
“…….”
다음 질문을 하려는데 할아버지의 점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온다네, 일이 많응개벼.”
그렇구나. 명절 잘 보내라는 의미의 택배였구나. 접수를 끝내고 우리가 인사를 하자 두 분의 안색이 매우 편안해 졌다. 나도 덩달아 안심이 되었다. 이 택배를 받는 아들은 어떤 마음일까.
동구 밖에서 손 흔드는 온 가족 모습이 빈 저울 위에서 어른거린다. 역귀성이라도 하시지. 공연히 심사가 사나워졌다. 하나라도 더 보내려는 어버이 마음이 부아로 치밀었다.
추석이 오려면 일주일도 더 남았는데. 기다림 없을 어르신들의 추석이 아주 쓸쓸하게 느껴졌다. 명절은 기다림의 설렘이 더 큰 법인데……. 편치 않은 걸음으로 우체국 문을 나서는 어르신들의 뒷모습을 계속 지켜본다. 두 분의 마음이 아직 우체국을 떠나지 못한 것 같다.
그 후로 집배실에서 배달 대기 중인 택배를 더 유심히 보게 된다. 별별 상품이 다 있다. 내 관점에서 보면 숨어있는 이야기가 많기도 하다. 몸과 마음이 하나인 택배가 대부분이겠지.
어느 날 할아버지 한 분이 찾아오셨다. 누가 헛개즙을 보내줘서 잘 먹었는데, 며칠 후 돈을 내라고 한단다. 적잖이 15만원이나 되었다.
“알아보고 드시지 그랬어요?”
그랬더니 전화 한 아가씨가 “맛보고 구입하세요.”라고 하기에 맛을 본 것이란다. 전화로 마케팅하는 업체들 대부분은 내용물 속에 시음용을 한 두 팩 동봉하는 사례가 많다.
그런데 이 어르신은 한 박스를 모두 시음용으로 오인 한 것이다. 딱하게 되었다. 발송 회사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이야기 하고 할인을 받았다. 9만원을 보내주고 마무리 했다.
덕분에 농촌 어르신들의 기호를 알게 되었다. 몸에 좋은 것을 선호 한다는 것이다. 객지의 자녀들은 이점을 참작하였으면 한다. 기왕 준비하는 것, 보약이나 건강 보조식품을 골라 보내기를 권한다.
추석명절이 다가오니 세상이 활기가 있어 좋다. 인정이 넘쳐서 좋다. 명절이 오고가는 택배로 인해 더 쓸쓸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승수= 완주우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