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에도 생명은 잉태하고 탄생했다. 1961년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면 이들이 바로 여기에 든다. 태어남도 중요하지만 1953년 휴전이후 숱한 후유증을 헤치고 학교에 나왔다는 그 자체가 행운이라며 자축하는 이들이 있다. 공부 잘하고 못하고가 문제 아니라 ‘졸업’이 사실 기적이란다. 남학생이 여자 고무신을 신었고, 도시락이 없어 사발에 밥을 담아 갔으며, 개구리 구이로 배를 채웠고, 책도 공책도 없어 맨손으로 다녔다는 애잔한 이야기가 53년 전 이들의 회고담이다. 거친 손 마주잡고 흔들며 천하제일 ‘동창생아!’ 외치는 한 마디 한 마디엔 웃고 울며 부딪쳤던 또래 소년 소녀 시절의 우정 그대로이다. ‘숙자야!’, ‘병돈아!’ 문턱 밖에선 어림없는 호칭이지만 막힌 길 뚫고 달려와 불러주니 고맙다며 서로 껴안는다. 힘들게 살다가 40대 불혹의 나이에 지성미 넘치는 평화주의자들의 발의가 이심전심으로 서로 통해 가 발족되더니 SKY[서울대 고대 연대]학벌과 해외 유학 학위를 자랑하는 이들보다 더 활발하고 호탕하게 지낸다. 풍랑 1,000번 흔들림에 한 뼘씩 자라는 동안 젊은이의 해방구를 모르고 살았으며 요동치는 세파에서 소리 소문 없이 건져 올린 자수성가로 가난의 수렁을 벗어났단다. 수도료 전기 값이 밀리고 반지하 찜통 방에서 아이 약값 걱정하는 아내의 한숨소리를 들으며 도울 재간 위로 말이 없었던 남편이 여럿이었다. 부부 노력으로 집을 사 등기부 등본을 가슴에 안고 하도 좋아 부둥켜안은 채 함께 울던 뜨거운 눈물이 허한 마음을 흠뻑 적셨단다. 취기가 돌자 「사나이 가는 길 앞에 웃음만 있을 소냐… 열 구비 도는 길마다 꽃잎은 날려보리라」 노래 가락이 나오고 돌려보는 바랜 졸업사진 속 까만 옷 꼬마들의 우렁찬 합창과 손뼉치는 소리가 기린봉을 울린다. 쉴 새 없이 흔드는 춤사위 너머 창밖 지는 해는 겨우 두서너 자 남았는데 갈길 600리를 잊은 채 무쇠솥 여닫는 기성도 좋아라며 떠날 줄을 모른다. /이승철=국사편찬위/史料조사위원(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09:5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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