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 엄마를 따라 껑충껑충 뛰어가는 아이를 보면 절로 웃음이 번집니다.
아이가 덜컹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떤가요? ‘어어!’ 외마디와 함께 반사적으로 아이를 일으켜 세우게 되죠.
곁에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행동할 겁니다.
“우리 모두는 보편적 의식의 구현이라는 자각이다.”-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의 말을 풀어보면 누군가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우리’라는 겁니다.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이 ‘이웃에 대한 공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완주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한울터자원봉사단 교육 중에 있었던 일을 잠깐 소개합니다.
아빠 품에 뛰어드는 아이 사진과 사고로 인해 차 안에 갇힌 가족을 구하기 위해 ‘도와주세요!’ 라고 절박하게 외치는 아빠를 엉거주춤 외면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여줬더니 베트남출신 어머니가 갑자기 울더군요.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토요일 마다 찾아가는데 헤어질 때마다 매번 서로 울게 된다.
그 때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이에게 여러 번 사과했다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그 상황과 아픔을 그 어머니가 동시에 공감했다고 봅니다.
켄윌버가 말하는 “인류가 삶에서 가장 필요한 조건으로 오로지 ‘나’만 생각하다가 점점 ‘우리’로, 이윽고 ‘우리 모두’로 바꾸어 인식해왔다” 는 말의 울림이 큰 시대입니다.
우리말에 ‘아는 체 한다’는 말 잘 아실 겁니다. 상대방을 잘 알아야 ‘아는 체’를 할 수 있고 이것이 틀어지면 영영 관계가 단절되기도 합니다.
서운함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물며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이 외면당했을 때는 어떤 감정일까?
교육 중에 여러 번 미안했습니다. 우리의 이웃이 된 그들을 제가 잘 몰라서, 구체적인 계획이나 행동을 해본 적이 없어서 볼 낯이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기다림의 존중’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아직 낯설어서 긴장하고 집중하는 그들이 우리를 잘 알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잘 알 수 있도록 ‘서로 기다려주는 것이 존중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원봉사는 어떨까요? 도내 자원봉사활동인구가 345,000명(2013.7.31기준)을 넘어선 요즘에도 가끔 “자원봉사를 어떻게 하죠?” 시작하기 어렵다고 묻는 분들에게 ‘내 주변 이웃을 잘 아는 것’부터 시작하시라고 저는 조언합니다.
알게 되면 그들의 아픔, 슬픔, 어려운 상황 등이 구체적으로 보이고 공감하게 되고 책임지게 됩니다.
바로 나와 이웃에 영감을 주는 활동(inspiring practice)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대입니다.
브룬과 울프(John Bruhn & Stewart Wolf)가 로제토 미스터리(The Roseto Mystery)에서 말하는 건강의 조건과 베를린 예술대 한병철 교수가 최근 자신의 책 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즉 상호작용하는 이웃공동체를 말합니다.
서로를 방문하고, 길거리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고, 뒤뜰로 초대하여 음식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 것, 바로 자원봉사로 이웃과 소통하는 세상을 상상을 해봅니다.
/서병철= 전라북도자원봉사센터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