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3거리 주유소 마을은 길과 들을 사이에 두고 윗마을·아랫마을로 이뤄졌는데 지명 익히기가 좀 까다롭다.
17번국도 화산면에 들어서면 ‘온달주유소’가 있다.
한때 이 동네를 ‘농상(農上)’, ‘농하(農下)’라 하더니 근래 간판 붙이는 시대를 맞아 각각 ‘용수(龍首)’, ‘용소(龍沼)’라 달리 내걸었다.
윗마을엔 한학자 서당이 있었고, 아랫마을에는 부자 구연직이 살아 ‘용소마을’ 하면 금산 인삼 장수와 거지들도 잘 알았다.
화산, 양촌, 진산, 금산, 전주행 버스 타는 거리로 물가 협곡에 산자수명 좋은 마을이다.
화산, 경천[운주], 고산면이 맞닿은 3거리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술집, 쌀집, 이발소, 담배가게, 약방, 물방앗간, 기계방앗간, 농협창고가 있어 몇 잔 술에 취기 돌면 화투판이 벌어져 밤 사이 논 몇 마지기가 훌렁 달아나 순경들이 주시하던 곳이었다.
근래 오래된 정자나무 아래를 잘 꾸며 더운 날 대화의 광장이 된다.
연예인 ‘정글의 법칙’ 김병만 대장 백부와 아버지가 운영하던 방앗간 옛터 가까이 ‘온달주유소’는 ‘화산3거리’의 대명사로 바뀌어 간다.
초여름 한낮에 산 일을 마치고 30분쯤 걸어 ‘온달주유소’에 들어서니 청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한다. 깜짝(?) 놀라 ‘나를 아느냐?’ 물으니 ‘모른다’는 대답과 함께 시원한 물을 권한다. 고맙게 받아 마시고 한 잔 더 청했다.
내 모습은 작업복에 밀짚모자, 검은 얼굴을 수건으로 가린 채 배낭지고 손에 연장 든 낯선 늙은 일꾼이 아닌가.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화산면 우월 출신임을 알았다. 자동차 운전 중이라면 기름 값 묻지 않고 ‘만(滿)탱크 채워라’ 했을 것이다.
예전 이름 ‘만경강주유소’도 좋았지만 지금 상호 ‘온달주유소’를 잊지 않으려고 평강공주 생각까지 했다.
전화 주문 한 통화에 얼른 기름 싣고 달려가 지친 몸 발 뻗고 편히 쉬게 하는 ‘온 고을 달빛 같은 존재’다.
절망 딛고 이룬 꿈 용처럼 치솟아야 할 주유소이다.
/이승철=국사편찬위/史料조사위원(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