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과 2009년에 이어 세 번째 추진됐던 완주-전주 통합이 지난달 26일 치러진 주민투표 결과 또 다시 무산됐습니다.
이번 주민투표에는 전체 투표권자 6만9381명 중 3만6933명이 참여, 무려 53.2%의 투표율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통합논쟁에 대한 종부를 찍고 싶다는 완주군민들의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이번 주민투표에서 반대표가 많은 것은 통합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 것과, 일방적 흡수 통합이 될 것이라는 군민들의 우려가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통합 이후 완주지역이 변방으로 밀려나 더 낙후될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과 불안감이 작용한 것입니다.
이렇게 완주-전주 통합은 주민투표 결과, 무산됐지만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습니다.
그 후유증 또한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첫째, 통합 추진 과정에서 찬반으로 갈린 민심을 다시 하나로 모으는 일입니다.
통합에 찬성했던 주민들도, 반대했던 주민들도 각자 나름대로 우리 완주지역의 발전을 위한 의사표시였습니다.
완주지역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자신들이 생각했던 주장을 펼친 것입니다. 의견의 차이와 방법상의 차이가 있을 뿐 지역의 발전을 위한다는 대의에서는 단 한 치의 차이도 없는 것입니다.
이제 결론이 내려진 만큼 찬반 양측 모두 주민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 결과를 겸허히 수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민 간 빚어진 갈등과 반목을 조속히 치유하고 해소해야 할 때입니다.
통합 논쟁으로 인해 팽팽하게 날을 세웠던 찬반 양측 모두 서로에 대한 갈등의 앙금을 훌훌 털어내고 주민화합을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통합 무산으로 인한 상생사업의 균열입니다.
현재 전주시가 부담하는 손실보전금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이에 따른 또 다른 갈등과 책임론이 부각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것은 없지만 통합을 전제로 시행한 많은 상생사업들이 말짱 도루묵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 상생사업 중 가장 호응이 컸던 시내버스 요금 단일화 및 무료 환승 정책이 통합 무산으로 인해 이전 체제로 돌아갈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완주지역 주민들의 피해는 불보듯 뻔합니다.
또한 전주시의 일방적인 흡수통합이 아니라는 의미가 담긴 상생사업 중 완주군 로컬푸드 직매장 사업도 이와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으로 관측됩니다.
완주군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당일 판매해 전주 시민들에게 인기를 모았던 효자동 로컬푸드 직매장은 지난해 10월 개장할 당시 전주시에서 연간 임대료(9,000여만원)를 대신 납부했으나 이마저도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완주지역 농민들에게 돌아가겠지요.
이 밖에도 완주군민의 승화원 사용료를 전주시민과 같이 30만원에서 5만원으로 감면해 주는 장사 등에 관한 조례, 완주군에 거주하는 60세 이상 노인의 전주시 복지관 이용을 허용하는 노인복지관 설치 및 운영조례, 전주시립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시립도서관 운영조례, 2014년까지 총 1,0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하는 내용의 농업발전기금 설치 및 운용관리조례 등 완주군민들이 누릴 수 있는 많은 할인 혜택들이 재검토 대상이 될 전망입니다.
문제는 이 모든 상생사업의 혜택이 사라지게 된다면 그에 따른 책임론과 또 다른 주민 갈등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서로를 보듬고 다독이며 치유해 나가야 할 시기에 또 다른 대립과 분열이 일어나서는 절대 안 될 일입니다.
완주군민들 스스로가 결정한 일입니다. 우리는 주민투표를 통해 완주군이 얼마든지 경쟁력이 있고, 타지역에 비해 행정력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자긍심을 표출했습니다.
우리는 통합 논쟁으로 인해 서로가 너무 많은 상처를 짊어졌습니다.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져만 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상처를 치유해야 합니다. 또 다른 상처를 안고 갈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 쌓인 갈등과 반목을 해소하고 소통하며 화합해 빠른 시일 내에 완주군민들이 다시 하나로 뭉칠 수 있도록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앞으로는 화합의 길만을 걸아가야 합니다.
주민화합이야 말로 진정한 통합입니다.
/기고= 이행구(봉동농협 조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