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람박(바람벽)은 갈수록 두터워지고’, ‘오래 될수록 좋은 게 친구’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이 다 맞는 것은 아니다. 욋때기(욋가지) 흙벽에서 콘크리트 건축물 시대로 바뀌었고, 초등학교 동창생끼리 말 않는 사람이 주변에 있지 않은가.
이런 세상에서 ‘위대한 보통 사람’을 만났다.
일흔 살 중반에 박호근씨와 함께 찾아와 ‘언젠가 묻힐 자리를 만든다’며 여기 세울 표석 글을 청한다.
부탁받은 사람 역시 숫한 데가 있어 그 청을 떼지 못해 초안(?)을 만들어 보냈으나 소식이 없어 ‘모두 없던 일로 하는구나!’ 이렇게 짐작했는데, 5년이 지난 어느 날 약속된 자리에 나가니 ‘보고 싶었다’는 인사와 함께 펼쳐지는 가슴 따뜻한 얘기는 둘 사이를 한층 가깝게 당겨 놓았다.
재회 때 궁금했던 일을 물으니 치표(置標)했고, 비도 세웠다며 ‘아직 몰랐더냐?’고 태연하게 물어 특별한 인물임을 깨달았다.
2008년 11월 처음 보낸 편지가 ‘십년지우’처럼 진솔하더니 만날수록 ‘먼저 다가가 섬기는 근황’까지 평안하게 설명해 준다. ▲가난했던 초등학교 시절 ▲논 한 마지기반 값 쥐고 상경한 이야기 ▲성신문화사 창업 ▲일산 출판단지 진출 ▲사업 정리 ▲고향에 집짓기 ▲땀 빼는 고추 감자 농사 ▲빚과 별도로 이웃돕기… 무릎을 맞대면 낮선 상상력에 불을 뎅겨(당겨)준다.
다만 80평생 남의 질곡과 가시밭길을 어찌 다 알려마는 솔직한 단답(短答)을 원하는 이에게는 다음 세 마디가 정답이다. 비봉 박태근(朴泰根) 옹은 첫째 혁신, 둘째 자유, 셋째 존경 받는 인물이다.
△‘상경-창업-정리-낙향’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혁신’이요 △매사에 억매이지 않고 남을 인정함이 ‘자유정신’이며 △가장 어려운 시혜(favour) 즉 거저주고 베풀어 남다른 ‘존경’을 받는다.
미래 사회는 위 세 가지가 흥망성쇠를 좌우 한다는 데[김병도] 이미 이에 도통 실천하니 향토의 자랑이다.
연지당 유복연 여사의 남편, 수봉·유경·경원의 아버지로 손자가 꼭 알아야 할 미담가화이다.
/이승철=국사편찬위/史料조사위원(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