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령에서 흔들렸다/풍경 전체가 바람 속에/바람이 되어 흔들리고/설악산이 흔들리고/내 등뼈가 흔들리고/나는 나를 놓칠까 봐/ 나를 품에 안고 마냥 허덕였다. 나를 백두대간으로 달려가게 한 ‘황동규’ 님의 이란 시(詩) 일부다. 초연히 살고자 할 적마다 세차게 부는 바람, 유독 나에게만 더 세게 부는 것 같은 그 바람 앞에서 나는 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었다. 백두대간 하늘금과 마루금 따라 세세히 자료를 찾던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말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다.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른다’라는 문장 하나에 산천을 모두 담은 선인들의 예지는 내 옹색한 등을 떠밀기에 충분했다. “세파를 가르리라.” 백두대간 종주란 지리산 천왕봉에서 강원도 진부령까지(남한구간)의 산행을 말하는데 상행을 북진(北進), 하행을 남진(南進)이라 말한다. 길이는 684km다.(산림청 홈페이지 기준) 그런데 이는 도상(圖上)거리이고 실측하면 750km를 넘는다는 게 다수의 견해다. 팀마다 편의에 따라 구간을 정하기도 하는데, 월간지 《산(山)》은 35구간으로 나누어 안내하고 있다. 구간 평균거리 19.5km. 한 달에 한 번 가면 꼬박 3년 걸린다. 2005년 5월부터 시작한 나의 종주는 2011까지 6년여에 걸쳐 이루어졌다. 처음 15구간은 계획대로 순조로웠는데, 시간과 경비의 소모가 과하다 싶었다. 전북지방우정청 동호인과 ‘백두대간 산악회’를 결성하고 대장을 맡은 것이 15 구간을 두 번 하게 만들었다. 결국 총연장 50구간을 하게 된 것이다. 한 구간 평균 9시간 산행, 된비알을 오르는 일이야 기차 화통소리 내며 견디면 되지만, 심야에 무박으로 이동해서 새벽에 초입을 찾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산중이라서 내비게이션이 통하지 않은 탓도 있고, 버스 기사님이 졸거나 당황 할까봐 말동무 하느라 여우잠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길을 잃고 헤매다 탈출로를 통해 하산한 적도 있다. 소백산에서 탈진한 여직원을 업고 고치령까지 가던 길, 휴식년제나 산불예방 등을 이유로 통제하는 구간을 만나 야음을 틈타 내달리던 길……. 그러나 대간 길 감동의 여정에 그 정도 변수는 유가 아니었다. ‘대간의 꽃’ 속리산에서는 천황봉 안부(鞍部)에 비스듬히 누워 삼파수(三波水) 흐름 따라 금강, 낙동강, 한강 유역의 역사를 좇자니 선인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 했다. 비 온 뒤 설악산 공룡능선에 피어오르는 구름숲을 밟고 지날 때는 여기가 천상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충청도 ‘하늘 재’에서 만난 나 홀로 산행 아가씨, 집 나온 지 삼 일 되었다고 했다. “먹을 것 좀 주세요. 아무거나.” 나는 아껴둔 체리를 한 움큼 집어주었다. 소백산·함백산·두문동재 푸세 밭 너머에서 펼쳐지는 형형색색의 야생화 향연, 그 향훈은 천리를 가려니 싶었다. 뭐니 뭐니 해도 늦여름 야간 산행은 대간 여정의 백미였다. 하늘에 왕 눈을 단 별들이 일제히 나타나 금붕어가 오물거리듯 깜박거리는 것이다. 은하수를 올려다 볼 때는 조그만 육신이 그 속으로 단번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아 쿨렁했다. “빛의 조화여,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의 틈이여!”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산 아래로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대로 하염없이 걷다가 지쳐 쓰러지면 그뿐……. 지금은 남진과 9 정맥 그리고 기맥을 번갈아 다니고 있다. 그렇게 해서 남는 게 뭐가 있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는다. “어느 봉우리든 그곳이 끝이 아님을 알게 해주죠.” 종주 마치고 문경에 있는 운달산 ‘김룡사’를 찾았다. 일주문 주련의 글을 보기 위함이었다. ‘이 문에 들어오거든 안다는 것을 버려라(入此門來莫存知解). 비우고 빈 그릇에 큰 도가 가득 차리라(無解空器大道成滿).’ 저기 장승 머리 위로 산들바람이 지나간다. 다시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승수= 완주우체국장
최종편집: 2025-08-09 2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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