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에 비가 내리고 있다. 멀리 보이는 아버지 계시는 봉실산에도 봄비가 그윽하게 내리고 있다. 며칠 전 묘소 주변에 심어두었던 철쭉들이 때맞춰 흠뻑 내려주는 비로 죽지 않고 모두 살아날 것 같아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내 농장에서 봉실산까지는 차로 10분 거리밖에 안 되지만 올 봄엔 생강을 지난해보다 두 배나 더 심어 무척 바빴다. 그래서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아버지 묘소에 다녀오지 못하고 늘 일하는 틈새에 잠깐 다녀오는 정도라 그런지 항상 그립고 또 그리운 곳이다. 살구꽃 향기 은은했던 봉실산 고개 울 아버지 나뭇짐 지고 넘어오셨지 동네사람 떠나고 무심한 세월 가니 성황당은 무너지고 산길도 없어졌네 어느 날 홀연히 하늘 가신 아버지 아 - 그리워 찾아온 고개 정답던 모습 흔적도 없고 찬바람만 내 가슴을 찢어주네 산새들 모여 조잘대던 봉실산 고개 울 아버지 내손을 잡고 넘어오셨지 비바람에 산허리 깎이고 허물어져 잡초만 무성하고 산새도 울고 가네 어느 날 홀연히 하늘 가신 아버지 아 - 그리워 찾아온 고개 정답던 모습 흔적도 없고 찬바람만 내 가슴을 찢어주네 아버지는 몇 년 전에 폐암수술을 잘못해서 수술 후 5일 만에 돌아가셨다. 폐암 초기라 수술하면 완치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의사 말만 믿고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하였으나 의료사고로 그만 돌아가셨다.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돌아가신 아버지고, 부검을 하게 되면 아버지를 두 번 죽이게 되는 것 같아 아무 소리 없이 내려왔다. 서울로 갈 때는 멀쩡하게 지하철 계단도 걸어 올라가셨는데 죽어서 시신을 모시고 내려오게 되니 내려오는 내내 창밖의 경치가 눈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인생 팔십을 살았으면 살 만큼 살았고 또 기력이 쇠약하기 때문에 수술 대신 방사선이나 약물치료를 했어야 하는데 무리하게 수술을 감행하여 하늘이 허락한 천수도 못 누리고 일찍 돌아가시게 한 것이다. 너무도 원통하고 큰아들인 내가 아둔한 탓으로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것 같아 심한 죄책감과 우울증에 빠졌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 수술을 안 했더라면 2~3년은 더 사셨을 것이란 생각에 3년간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다. 49제 치르고 나서 꿈에 아버지를 만났다. 개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하고 또 아버지 영혼과 아버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한 걸 보면 아마 내가 우울증으로 인한 심장마비나 고혈압으로 순간 저승문턱까지 가서 아버지를 만나고 온 게 아닌가 싶다. 꿈속에 아버지께 ‘수술을 해서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했다’고 용서를 빌면서 절을 다섯 번하고 용돈을 드리고 큰 호수를 헤엄쳐 이쪽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날 꿈에 준 용돈이 부족한 것 같아 10만 원짜리 수표 2장을 아버지 산소에 묻어주었다. 아버지 생각이 날 때면 가끔 아버지 산소가 바라보이는 고향 뒷산인 봉실산 고개에 올라가 보았다. 그곳은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넘어오던 추억이 서린 곳이라 옛 생각과 함께 아버지 모습도 되살아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늦가을 해질 무렵 고갯길에 올라가 보니 사람들이 돈 벌기 위해 서울로 떠나고 세월이 흘러서인지 옛날에 있던 성황당 돌무덤도 보이지 않고 산길도 잡초에 막혀 사라져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거기에 늦가을 찬바람만 쓸쓸하게 불어오니 사람의 한평생이 너무 허망한 생각이 들어 가슴에서 우러나는 대로 시인지 노래가사인지 적어보았다. 사람들은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는데 나는 아버지를 가슴속에 묻은 것 같다. 부모가 죽어도 이럴진대 자식 잃은 부모들 가슴이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이 넓은 천지에 슬픔 없는 사람 어디 있고 눈물 없는 인생 어디 있겠는가. 다 슬픔을 감추고 눈물을 삼키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민초들의 이야기고 그 이야기가 바로 우리네 삶이고 인생인데 말이다. 환갑이 다 되어가는 나이고보면 어느 정도 인생도, 생과 사에 대해서도 관조적으로 바라볼만 하건만 마냥 사부곡 타령이니 나는 정말 덜 떨어져도 한참 덜 떨어진 인간인가 싶다. 그럼에도 내년 봄에는 이번에 심어둔 철쭉들이 형형색색 환하게 꽃이 피고 그 위로 뻐꾸기도 울어대 인적도 드문 고요한 산속 정적을 깨뜨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김운회(생강재배농)
최종편집: 2025-08-14 03: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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