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이사가 흔한 일이나 막상 고향을 떠나기란 보통 사건이 아니다. 살기 어려워 남부여대 야반도주 한 건달이든, 희망안고 향관을 나선 청년이든 꿈결에도 선한 게 고향이나 떠나보낸 사람들이야 세월가고 나이 들면 잊혀 지기 마련이다. 손병돈 육군 원사는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에서 태어났다. 군 경력만 33년이라니 일찍 떠났음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초반 삼기초등학교를 나왔으니 50년이 넘었다. 기억해 주는 사람 드물다지만 펼쳐내는 추억담에는 듣는 이의 가슴을 찡하게 한다. ‘고산에도 이런 사람이 있구나!’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고상한 성품 앞에 미안한 미음이 뇌리를 친다. 소상한 기억력에 놀랐고, 졸업할 때 넘겨받은 쌀 한 가마니가 여섯 배로 늘었는데 어느 회원이 쓰고 나자빠져 돈도 우정도 날아갔단다. 삼기초등학교 11회 졸업생들의 회한. 그 후 모교는 폐교되고, 교우들은 흩어졌으며, 더러는 소식이 끊기자 40대 중반에야 서로 연락해 달콤했던 시절을 화두로 즐기던 중 근래 손 원사가 동창회장이 되었단다. 없어진 자산이 못내 아쉬워 본전이라도 마련코자 매주 복권을 사 같은 숫자로 일관되게 표기를 하나 번번이 허탕이라 바꾸었더니 아차! ‘당첨 대박’이 날아갔다는 것이다. 월남전선 최전방 수색대장 시절의 끈기와 인내심에 자기절제가 오늘을 있게 했다며 기어코 해내겠단다. 파란만장 맵고 쓴 체험담 위에 희망담은 이야기는 감흥이 넘쳐 ‘인걸지령’ 삼기정(三奇亭)까지 우아하게 보인다. 학자, 퇴직자, 재력가, 연예인, 군인, 공무원은 지친 삶 달래며 차 한 잔에 추억 더듬고, 술 한 잔 속에 잃어버린 정담을 묶어내면 한 권의 책 《고향여지승람(故鄕輿地勝覽)》이 되고 남을 것이다. 오래된 벗 찾아 활짝 편 손으로 끌어안아 보라. ‘하면 된다’는 신념 하나로 학력 과잉시대를 이겨낸 위대한 아버지의 삶에 감읍하는 아들 상배 군은 세상 아무리 험할지라도 만지면 반응하는 장애를 훨훨 풀어버릴 수 있단다. /이승철=국사편찬위/史料조사위원(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06: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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