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온 나라가 길로 술렁이고 있다. 올레길, 둘레길, 마실길, 고원길, 바람길 등.
있는 길만 해도 수만 갈래인데, 새로운 길을 만들기 위한 삽질 또한 끊이지 않고 있다.
호사가들은 새로 난 길을 다녀와야만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탐방에 열을 올린다.
집 앞에 골목길이 있고, 천변 둔치에 모로 가는 길이 있고, 산에는 여러 갈래 길이 정상으로 또 암자로 갈라서 있다. 그런데 왜 이리 새로운 길로 속속 줄을 잇는가.
길하면 중국의 문학가 ‘루쉰’이 소설 〈고향〉에서 말한 정의가 마음을 끈다.
‘애초에는 길이 없었다. 사람이 하나, 둘 모여 걸어가니 길이 되었다.’ 라고 한...
얼마 전에 제주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 씨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저 유명한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다가 그늘 밑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영국인 부부가 묻더라는 것이다.
“당신네 나라에는 길이 없어요?”
감전된 듯한 느낌을 받은 그녀는 곧바로 귀국하여 고향인 제주도에 길을 만들기 시작하였으니 그 길이 바로 올레길이다.
제주 올레 길 탐방에 나섰다. 수많은 ‘올레꾼’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여러 사람에게 이곳을 찾는 이유를 물었다. 한결같은 대답은 “경치 좋은 곳에서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올레길에서 머리를 식히면 더 효과가 있을까?’하는 의문이 일었다.
밤에 전등 들고 다니는 올레꾼을 보면서 내 질문이 무색하다는 생각을 하는 차에, “너는 생각하고 웃냐?”라던 친구의 핀잔이 떠올라 애꿎은 질문을 접기로 했다.
우리는 인생을 길에 비유한다. 여로(旅路)라며, 나그네 길 이라며... 그런 차원에서 이야기 하자면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나설 때, 걸을 때, 걷고 난 후에...
어느 날 직장상사와 대화 하는데, 길이 화제가 되었다.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가. 어떤 이는 티코 타고 고속도로만 달리는가 하면, 어떤 이는 제니시스 타고 비포장도로만 골라 다닌다.
지프에 올라앉아 길을 가리지 않고 달리는 것, 그것이 진정 용기 있는 인생 아니겠는가.
‘어떤 차를 타든 시종일관 고속도로만 고집하는 게 잘 된 선택일까?’ 라는 질문과 함께 대화는 끝났다.
잠시 차에서 내려 다른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다보면 내가 보인다.
앞선 사람의 등을 보고, 나의 등을 남에게 보여주며 걷는 속에 평화가 있다.
경합도 없고, 무리수도 없고, 이기도 없는 길, 거기서 참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장소의 이동을 따라가며 진행되는 영화 또는 그러한 장르를 일컬어 ‘로드무비’라고 한다.
여행, 도주 등을 중심 플롯으로 사용하며 여러 공간을 거치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 사건들을 통해 어떤 자각과 의미를 터득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로드무비를 보면서 더 많이 울고 웃는다. 영화에서 쉽게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드무비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미국영화 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 길과 똑같은 길을 본적은 한 번도 없어. 세상의 길은 모두 다르니까.”
그렇다. 세상의 길은 모두 다르다. 다시 말하면 인생도 모두 다르다. 질주하는 자동차와도 같은 인생, 인생들...
다른 길로 나서보자. 속도전에서 잠시 내려 보자. 이유도 조건도 없이 몸과 마음을 이완시킨 채….
조금 선명해진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어떤 길인지. 어떻게 가고 있는지. 길을 내는 마음도 한결같았으면 좋겠다.
/이승수 =완주우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