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전을 다녀왔다. 고흐가 파리 생활을 하는 2년 여 동안 그린 작품들을 사진이 아닌 실제로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니었는지 일요일 아침부터 인파가 몰려서 번호표를 받고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고흐의 그림을 처음 접한 건 여고시절 편지지에 인쇄된 밤의 카페 테라스였다. 그림에 문외한인 사람이 보더라도 그 그림의 노란 불빛과 파란 밤하늘이 주는 아름다운 색감은 공부에 힘들고 사춘기로 흔들리는 고교 시절 인쇄된 그림 한 장만으로도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 줬던 것 같다.
고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광기의 화가, 정신질환으로 자기 귀를 자른 사람, 함께 작업하던 고갱과 싸우다가 죽을 뻔 했던 고갱이 무서워서 도망 가버렸다는 일화, 평생 동안 단 한 점의 그림만 팔았던 불행하고 가난했던 화가, 죽어서야 위대해진 화가… 아마도 이런 것들일 것이다.
과연 고흐는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불행하기만 했을까? 삶에서 진정 행복을 찾기란 어려워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고 요양원에서 결국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 것일까?
그렇다면 고흐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하늘, 춤추는 듯 아름다운 밀밭, 고흐의 색깔이라 이름 지어진 노란 해바라기를 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동은 어디서 온 것일까?
불행했고 그로 인해 정신착란까지 일으킨 사람이 그렸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느낌들을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 있는데 말이다.
고흐가 그림을 그린 건 불과 10년 정도라고 한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고흐는 젊은 시절 목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선교사가 되고자 했지만 가정 형편상 신학교를 들어가지 못하고 탄광에서 선교 생활을 했는데, 신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경력이 문제가 되어 선교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당시에도 소위 스펙이 중요하긴 했나 보다 싶어서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해진다. 탄광촌에서 힘들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광부들의 모습을 본 고흐는 ‘언젠가 이 이름 없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을 그려서 세상에 보여줄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할 것 같다’며 그들을 그리기로 마음먹고 그림 습작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뒤 프랑스 남부를 옮겨 다니며 아름다운 자연과 평범하지만 묵묵히 일하는 농부들을 캔버스에 담았다. 그의 편지 글을 읽어보면 ‘늘 내 마음속에 있는 그 그림, 나의 별이 빛나는 밤은 언제쯤 그릴 수 있을까’ 라며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으로 감자를 쪄먹는 시골 농부의 가족을 그리며 성실하고 정직한 이들의 삶을 더 가까이 표현하고자 노력한 흔적들도 엿보인다.
별들로 희망을 표현하는 것, 저녁노을 빛으로 영혼의 그리움을 표현하는 것들이 그럴듯한 속임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그려내길 원했고, 일상의 작은 행복에 감사하는 것도 늘 잊지 않았다.
한 번은 네덜란드의 화가 친구가 고흐에게 삶의 신조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이처럼 대답했다고 한다.
“침묵하고 싶지만 꼭 말을 해야 한다면 이런 걸세…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산다는 것, 곧 생명을 주고 새롭게 하고 회복하고 보존하는 것, 불꽃처럼 일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하게, 쓸모 있게, 무언가에 도움이 되는 것. 예컨대 불을 피우거나, 아이에게 빵 한 조각과 버터를 주거나, 고통 받는 사람에게 물 한잔을 건네주는 것이라네”
여러 책속에 인용된 고흐의 편지들을 읽으면서 고흐는 분명 그림을 그리는 삶을 사랑했으며, 비록 가난에 절망하고 힘들어했지만 살아가는 순간 순간마다 많은 기쁨을 느끼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하나의 그래프로 표현해 본다면 아리랑 고개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 구불구불한 곡선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누구도 한없이 위로 올라가거나 바닥으로 치닫는 직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원했던 일이 이루어지는 성취감을 맛볼 때는 훌쩍 고개가 높아지고, 하던 일에 실패하거나 세상에 좌절감을 느낄 때는 바닥을 치면서 가라앉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다시 일어나서 툭툭 털고 힘을 내서 가던 길을 나아가지 않을까. 어렵고 힘이 들 때 나를 움직이게 하는 삶의 중심,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고흐의 경우 사람을,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하는 일과 그것을 자신의 캔버스에 옮기는 것이었다는 걸 고흐전을 다녀온 후 깨달았다.
/서소영= 약사(이서면 하나로약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