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전북 출신 정승은 황희-황헌-이사철-이상진이요, 대한민국 국무총리는 진의종-고건-황인성으로 알고 있다. 새 정부 인사를 보면서 이분들이 더 한층 우러러 보인다.
‘2013년 3월 13일’은 ‘3’자 셋이 겹쳐진 좋은 뜻의 ‘삼삼삼’. 삼삼삼한 세 사람이 직손 황삼택 안내를 받아 황헌 좌의정 산소에 갔다.
슬치에서 ‘U턴’ 상관면 용암리 산속 시멘트로 포장된 여러 갈래의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내리막 구비에서 고속도로가 바로 보이는 곳에 있다.
작년 여름 사초하고 겨울동안 흙이 부풀어 올라 디딜 때마다 발이 폭신한다. 황헌의 파란만장한 사연이 《조선왕조실록》에 많이 있음을 잘 아는 황양규 회장이 주선하여 황호철 화백과 함께 물안개 자욱한 묘소를 찾았다.
우람한 치장이 아니며, 아직 신도비가 없고 단갈(短碣)의 이끼를 벗겨보니 ‘숭정기원 후4 병오 8월 상한’이 희미하게 들어난다.
이 해는 헌종 12년(1846)으로 약 170년 전이다. 근래 세운 오석비(글 김형재, 글씨 황상규)가 있으나 자경동 등 확인할 내용이 더러 있다.
오는 길에 걸게 차린 점심을 마치고 김제시 용지면 우주황씨 집성촌에 갔다. 유서 깊은 △구암강당 △구암사 △중수비 △공적비 △충신·열녀각 △유허비 △선생 신위비 △큰 나무 등등 볼거리가 많다.
특히 초등학교 마당가의 은행나무가 시선을 끈다. 하나는 2012년 큰바람에 넘어졌고, 누군가가 두 그루에 불을 질러 까맣게 탔으며, 3/4쯤 텅 빈 고목의 치료는 하지 않은 채 넘어진 몸통이 토막토막 잘려있다. 아마 ‘행재목’ 오직 돈만 보인 듯하다.
이 은행나무는 줄잡아 500년 황응청이 장암에서 이사하고 심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등록된 노거수가 아니라 이 지경이라면 그 동안의 무관심이 안타깝다. 돌아오는 길에 황양규[성익] 회장은 유독 말이 없다.
서양에서 싫어하는 13이란 숫자 때문일까? 아니다. 허탈감 때문일 것이다.
/이승철=국사편찬위/史料조사위원(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