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직(罷職)이란 ‘관직에서 물러나게 함[discharge]’이니 쉬운 말로 ‘쫓겨나고’, ‘몰려남’ 곧 ‘파면’이다. 《고산지》에 파직된 현감이 여럿이다. 기록 무서운 줄을 알아야 한다. 『신경희(申景禧), 송유조(宋裕祚), 이덕부(李德傅), 민후건(閔後騫), 송석몽(宋錫夢), 박민도(朴敏道), 홍종운(洪鍾韻), 김정진(金廷進), 이유인(李惟寅), 이광진(李光鎭), 조억(趙億), 한시중(韓時重), 이박(李?), 이증현(李曾賢), 조태기(趙泰期), 이세무(李世茂), 이지걸(李志傑), 박상일(朴尙一), 이한종(李漢宗), 권경(權炅), 홍우해(洪禹海), 홍응복(洪應復), 권형(權?), 서명건(徐命建), 윤득구(尹得龜), 이우(李?), 조재이(趙載履), 송수연(宋守淵), 이의일(李義逸), 윤현석(尹玄錫), 유한보(兪漢輔), 송계래(宋啓來), 이인행(李仁行), 이재순(李在純), 유한민(兪漢敏), 이문재(李文載), 조학전(趙學典), 어재완(魚在琬), 최원(崔瑗), 류선(柳善), 조기진(趙基晉), 홍섭주(洪燮周)』… 이들은 부정을 저질러 백성을 괴롭히다가 ‘ㅁ이 달아났다’고 봐야 한다. 한편으로 고산 선비들이 깐깐하여 그냥 넘어가지 않고 기어이 ‘삼태기를 태웠을’ 가능성이 크다. 고산은 귀양지였다. 귀양 온 사람 가운데 정치적인 이유로 온 자가 있었고, 다만 위리안치가 아니라 주민 접촉이 가능하여 젊은이를 가르치기도 했다. 경상도 송희규, 정경세 선생이 이런 인물에 든다. 1873년 성균관 생도로 권당(捲堂:데모)하던 수두(首頭:우두머리) 이교식(李敎植)이 귀양왔다. 패기 넘치는 선비이었으니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고산민란’ 때의 민중들은 단 며칠 만에 요구 조건을 받아내기도 했으니 싸울 줄을 알았다. 지금 군수는 언론과 의회 및 공무원 노조가 있어 부정 행위가 어렵지만 민선에 임기제라 파면은 흔치 않다. 스스로 무덤을 파서는 아니 된다. 고산사람 곶감 자랑하는 중에 ‘진상품’ 운운 말조심 해야 한다. 이는 바친 게 아니라 ‘빼앗겼다’고 봐야 한다. 못 먹고 당한 게 무슨 자랑이냐? /이승철=국사편찬위/史料조사위원(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06: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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