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앞에서 차를 두고 택시를 탔습니다. 친구의 모친상에 조문을 가는 길이었지요. 퇴근시간이어서 그런지 도로는 꽤 붐볐습니다. “차가 이렇게 막히면 수입에도 지장이 많으시지요?” 나는 운전기사가 혹시 짜증이라도 낼까 봐 넌지시 말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그의 반응이 제 마음을 조금 불편하게 했습니다. “장거리는 더 손해지요.”라고 퉁명스럽게 한마디 내뱉고는 화난 사람처럼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었으니까요. 나는 괜히 머쓱해져서 아예 입을 다물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내가 가려는 곳까지가 ‘장거리’인지 ‘단거리’인지는 자꾸 신경이 쓰였습니다. 택시에 설치된 작은 TV에서는 얼마 전에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의 참 온화한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있었습니다. 생존해 계실 때 그 분은,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지요. 이윽고 장례식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미터기에 4,500원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도착해도 4,700원은 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지갑에서 오천 원짜리 하나를 꺼내면서 마음을 잡아먹었습니다. 거스름돈을 백 원까지도 꼭 받아내겠다고 말이지요. 사실 나는 택시에서 내릴 때 한 300원 정도는 거스름돈에서 제외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요금이 3,700원이면 4,000원을 내고 기사가 잔돈을 챙기기 전에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서둘러 인사를 건네거나, 오천 원짜리밖에 없을 때는 “천 원짜리 한 장만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마음이 요만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택시가 갑자기 거북이걸음을 시작한 것입니다. 주차장에서 운전자들끼리 시비가 붙어서 차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게 먼발치로 보였습니다. 조문이야 조금 늦어도 상관없지만 문제는 택시요금이었습니다. 차가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사이 미터기는 어느새 4,900원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룸미러로 보니 ‘장거리’는 더 손해라고 했던 운전기사의 표정은 더 굳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창밖으로 눈길을 돌려버렸습니다. 그리고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지요. 여기서 그냥 내려? ‘장거리’를 타고 온 손님이 내리겠다는데 어쩔 거야... 하지만 차마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거기서 내려도 택시는 주차장까지 가서 돌아나와야 했으니까요.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오천 원짜리를 지갑에 도로 넣고 만 원짜리를 꺼냈습니다. 한참 뒤 장례식장 앞에 도착해서 미터기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어느새 미터기의 숫자가 ‘0’으로 돌아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잠시 딴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운전기사가 미터기를 슬그머니 ‘꺾은’ 게 틀림없었습니다. 거스름돈을 챙기고 있는 택시기사의 싸늘한 기세에 눌려 나는 자초지종을 따져 묻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내 손에 쥐어진 거스름돈은 놀랍게도 오천 원짜리 한 장과 백 원짜리 동전 세 개였습니다. “이거, 계산이 잘못됐는데요?” 하지만 그는 룸미러 속에서 빙긋 웃더니, “좋은 하루 되십시오.”라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조금 전에 잔머리를 약삭빠르게 굴렸던 일이 생각나서 촌지를 처음 받은 햇병아리 교사처럼 거스름돈을 주머니 속에 선뜻 집어넣지도 못했습니다. 하루 열네 시간씩 운전을 해도 아이들 학원비는 엄두도 못 낸다던 어느 택시기사의 말이 떠오른 건 택시에서 내린 다음이었습니다. 나는 다른 손님을 싣고 떠나는 택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장례식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주차장에 가지런히 서 있는 자동차들 위로 따사로운 햇볕이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봄날은 오고 있었던 것이지요. /송준호 =우석대 창작문예과 교수
최종편집: 2025-06-24 06: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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