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석에만 앉으면 바빠지는 사람이 있다. 느긋하던 사람이 자동차에만 오르면 허둥대는 것이다.
사무실에서도 컴퓨터 부팅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직원을 볼 수 있다. 지하철이나 백화점의 에스컬레이터도 한쪽이 비어있다. 뛰는 사람을 위해 열어놓은 것이다.
되풀이되는 일상임을 한 번쯤 상기해 보면 자신이 바삐 움직이는 이유를 깨닫게 되지 않을까.
인디언은 말을 타고 길을 가다가 잠시 쉬면서 자신들이 온 길을 되돌아본다고 한다. 걸음이 너무 빨라서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 봐 그런다는 것이다.
조급증은 성격 탓도 있지만 앞쪽 뇌〔전두엽〕의 상태와 관계가 있다고 뇌 과학자들은 말한다. 감정조절이 잘못되면 화와 조급증에 노출되기 쉬우며, 특히 외부자극에 민감한 사람이 충동적이고 조급하다는 것이다.
충동을 관장하는 뇌의 부위가 눈썹 부근에 있다니 알아서 잘 조절해야 하겠다. 여유를 찾는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두 가지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하나는 지금 내가 왜 바쁜가를 스스로 반복해서 질문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왜 바쁘지……?’ 다른 하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글자 그대로 널브러져 있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고 집에서 TV에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급적 환경이 좋은 곳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래서 알게 된 곳이 전남 신안군에 위치한 ‘증도’다.
우리나라에서 슬로우 시티 지정이 가장 먼저 된 곳. 섬에 들어가 짱뚱어 다리를 지나고, 굼벵이 심벌이 그려진 광고판을 뒤로하고 달리다 보면 전등 없는 집이 나온다.
이곳에서 몸을 부린다. 진일토록 거닐기, 듣기, 권태롭기, 기다리기, 마음의 고향 찾기 등에 젖어들다 보면 마음이 넉넉해진다. 싱싱한 채소와 해산물로 식사를 하고 돌아앉으면 평화가 물밀듯 밀려온다.
그곳에서 슬로우 시티(Slow city)에 대해 알게 됐다. 페스트 시티(Past city)에 대항하기 위한 느리게 살기 운동이란 것.
여기서 City는 농·어촌에 대비되는 도시의 의미가 아니고 마을 또는 지역쯤의 뜻으로 사용된다.
이탈리아의 ‘그레베’가 효시다. 피렌체에서 약 1시간쯤 떨어진 인구 1만 4천여의 소도시. 파울로 사투르니니란 시장이 2000년부터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여 시작한 운동이다.
미국에서 무차별적으로 만들어 보내는 패스트 푸드에 대항하기 위하여 슬로우 푸드를 권장하다 보니 생활방식이 바뀌게 되었고 그래서 느림의 메카가 되었다고 한다.
냉장고 없애기 운동부터 시작하였다니 의아스럽기도 한데, 냉장고에 넣지 않은 싱싱한 식자재만 쓰는 훈련을 계속했다는 것이다.
생산자는 매장에 나와 제품설명을 하고 장기자랑도 하며 소비자와 만난다. 급할 것 없는 이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지금 하는 일에 열중한다.
최근 ‘로하스 컨슈머’(LOHAS Consumer : 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bility)가 대세다. 자연과 건강을 중시하고 느리게 살고 싶어하는 대표적인 소비자 집단을 지칭한다.
이들이 표방하는 바가 선언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자연과 어우러져 웰빙하는 삶, 여유로운 삶을 찾아야겠다.
그런데 사람의 관성은 힘이 너무 세다. 습관을 바꾸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느림의 도시로 가는 길은 그래서 더 멀다.
우리 완주의 ‘로컬 푸드’를 보면서 슬로우 시티와 로하스 컨슈머를 생각했다.
명실 공히 전국 최고, 최적으로 정평이 난 푸드의 메카. 이곳에서 신선처럼 사는 법을 알린다면 식품 따라, 경관 따라, 인심 따라 사람이 몰려들 것이다.
나도 이곳에다 몸을 부려야겠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가 참 힘들다.
/이승수= 완주우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