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봉동읍 낙평리를 중심으로 전주 일대에 전의이씨가 많이 산다.
임진·정유왜란 때 전의이씨 이영남 장군은 남해에서 공을 세웠고, 이정란 의병장은 전주 사수에 혁혁한 업적을 남겼다.
전주 선비들은 선충사(이영남)와 충경사(이정란)를 세워 그 공적을 기리며 숭배한다.
는 전주예수병원 바로 뒤편에 있으며 ‘장의문(仗義門)’, ‘자명문(自明門)’이 있고 ‘선충사(宣忠祠)’ 세 자는 근대 정치인의 글씨이다.
국회의원 여럿이 나온 집안으로 자손이 많아 함부로 대하지 못할 집안이라는 정평이 나 있다.
사우 경내에 잘 쓴 글씨 우람한 검은 돌 비석이 있어서 시민들이 우러러 보았다.
천년 갈 비석이기에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파악 하리라’ 다짐하면서 지내다가 저 지난 겨울 들렸더니 측면에 여러 사람 이름이 새로 새겨져 있어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호기심이 높았는데 연 초 지나다 다시 들여다보니 비석이 통째로 사라졌다.
게으른 탓으로 △비석 표제명도 △음서 내용도 △추록한 이유도 △옮겨 간 까닭도 △언제 세울지도 모른다. 물을 길도 없어 심히 안타깝다.
남의 종중 일이라 지나친 탐구는 실례이기에 재건만을 기다릴 뿐이다. 전주시 서신동 전룡리 성미당 이웃에 이철승 노 정치인의 옛집이 있었고, 봉동 낙평리에 이정원씨 생가가 있다.
오래오래 기억해야 할 건물이다. 당국과 사회단체는 보존과 전수에 힘을 써야 한다.
봉동 주민들은 삼봉로 큰길가 ‘구 봉상생강조합’ 옛 건물을 잘 지켜 ‘봉상자산’으로 삼아야 한다. 혹 어느 날 와장창 헐릴까 두렵다.
고산 남봉리 천변 유서 깊던 망북대(望北臺)가 사라진지 40여년이지만 복구가 늦어짐은 묘한 감정 때문이리라.
근래 구명산 꼭대기에 세운 정자 이름은 무엇인가?
/이승철=국사편찬위/史料조사위원(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