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長子權) 판 사람이 있었다. 곡식 몇 말 받고 논·밭 넘겨준 가련한 농부를 보았다. 많은 식구 어려운 살림에 어쩔 수가 없어서 딸을 민며느리로 준 부모가 있었지.
밥 한 그릇 죽 한 대접이 이토록 소중했었다. 오늘도 궁한 사람이 없는 게 아니지만 부득이 밥 이야기를 한다.
학교생활 직장근무를 하다보면 집 밖의 음식을 자주 먹게 된다. 하숙하면 이 역시 외식이다. 어느 식당에 ‘우리 집은 화학조미료 쓰지 않습니다.’ 이렇게 써 붙여 놓았는데, 이는 곧 ‘다른 집은 쓴다.’는 이야기와 통한다.
‘생사병로’ 강연장의 연사 말에 의하면 ‘화학조미료’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밥 집’은 수지타산에 혀·눈 감각과 편리함 때문에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을 수 없단다.
이 주인은 『밥 집 어머니』이고, 내 집 어머니는 화학조미료를 대체로 덜 쓴단다. 아들, 딸, 며느리가 외식하자며 모시려면 식구들을 기어이 이끌고 집에 들어와 된장-간장-마늘-파-김치-젓갈, 들기름 발라 구운 김에 엄마 솜씨 고사리나물 고들빼기김치를 차려낸다.
‘왜 고생하세요?’ “야! 니들 항상 외식만 하니 ‘화학조미료에 외국산 덜 멕이(먹이)려고 그런다.” 이 분이 바로 『집 밥 어머니』다.
아들 사랑, 가족 사랑과 손님 대접이 확 들어 나는 밥상이다. ㉣교사가 무주에서 ‘보신탕집’에 하숙을 했다. 두어 끼는 잘 먹었는데 며칠 지나니 개 냄새를 못 견뎌 곧 옮길 수밖에 없었단다. 풍남동 박용희 씨는 장독대 밑반찬 때문에 이사하지 않고 평생 그 집에서만 살았다.
오늘날 『집 밥 어머니』의 정성어린 말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여도 천금 같은 효행에 든다. 오이장아찌, 도라지나물 제대로 맛 아는 입이라면 행복한 사람이다. ‘의원’보다 ‘병원’비가 훨씬 비싸더라. 의사들 좋은 일 시키려고 아무 것이나 먹는가. 살찌기보다 살빼기가 더 어렵다는 걸 알아야 한다.
어머니 밥상은 보약이더라. 새내기 ‘젊은 엄마’들이 꼭 알아 둬야 한다. 병원 가지 않는 사람이 애국자이다.
/이승철=국사편찬위/史料조사위원(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