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앞에서 유독 ‘친구’ 자랑 잘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아래 두 친구는 후학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임윤성(1547~1608)과 구대우(1550~1631)는 고산이 한 고향이고 만년에 현감을 각각 역임해 더욱 가까웠다.
임윤성이 62세에 거창현감 현직에서 작고하자 온 골이 놀랐고, 당시 59세 친구 구대우의 충격이 매우 컸다.
그 이듬해 3월 임윤성의 장자 섬(暹)이 구대우 선생을 찾아가 아버지 행장(行狀)을 부탁했다. 젊은 나이 구 선생이 갓 회갑 넘어 죽은 친구의 행장을 썼으니 내용이 완벽하다.
그런데 바로 이 행장이 당사자 임씨 문중에 없었고, 원본이 구씨 집안에 보관되어 있다가 근 300년이 지난 근세에 나와 임윤성 선생의 생애가 소상하게 들어났다.
행장 가운데 『거창 현감으로 부임하니 불효막심한 자가 있었다. 어떻게 처리할까 궁리 끝에 하인에게 말을 보내어 태워 오게 했다. 동헌 안에 들어서자 노 현감이 일어나 가깝게 다가가 맞았다.
방안에서 마주 앉아 좋은 음식을 대접하며 세상사는 이야기를 쉽게 하니 가책 받은 죄인(?)은 더 이상 견디지를 못하고 벌떡 일어나 ‘사또 죽여 주소서.’ 진정한 양심고백을 했고, 물러나자마자 어머니가 있는 군막(軍幕)에 찾아가 업고 돌아와 한 평생 효도하며 살았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학교 다닌 덕으로 좋은 직장에서 위아래 사람을 만나 친하게 지낸 사람 많다. 좋다는 친구 가운데 자기 행장 맡길만한 사람 누군가 살펴봄도 현명한 일이다.
임윤성 선생은 완주군 화산면 종리 천곡사에 배향되었고, 구대우 선생은 파조(派祖)로 그 후손이 많다. 호가 취은(醉隱) 술을 잘 하셨다. 82세 작고할 때까지 과부와 고아를 외면치 않았고, 어려운 사람을 돌보다보니, 정작 자기 집안은 가난했다.
사람보다 하느님을 믿었다.[…由平人者, 可求而在於天者(유호인자, 가구 이재어천자)]. 임윤성은 글씨를 잘 썼다[襟韻淸高骨法奇 放筆長傾三峽水]
/이승철=국사편찬위/史料조사위원(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