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터가 있는 삼례에서 나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교수들과 함께 가까운 봉동으로 가끔 국수를 먹으러 가곤 한다. 삼례와 봉동을 잇는 길은 몇 년 전에 4차선으로 시원하게 뚫렸는데, 그 덕택에 짧은 점심시간에도 맛있는 국수를 먹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날도 나는 선후배 교수 두 사람과 함께 봉동으로 가는 길이었다.
“근데, 봉동 가는 이 길 이름이 뭔지 알아요, 형님들?” 완주군 보건소 앞길을 지나고 있는데 핸들을 잡고 있는 후배교수가 뜬금없이 그렇게 물었다.
“아, 이 사람아 안 봐도 비디오지, 그것도 몰라?” 평소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선배 교수가 여태 그것도 모르냐는 듯 뒷자리에서 대뜸 말을 받았다. 나 역시 그 길 이름을 정확히 모르고 있던 터라 귀가 솔깃해졌다. 선배 교수의 말이 이어졌다.
“역사적으루 다 보더라도 서울하고 부산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이름은 경부선, 서울 춘천은 경춘선, 서울 인천은 경인선, 부산 마산은 부마고속도로, 전주 군산은 전군도로, 아, 요새는 천안논산고속도로라고도 안 허든개비, 그럼 뭐겄어? 이건, 삼례하고 봉동을 연결하는 도로니까 틀림없이 삼봉로 아니면 봉삼로다. 내 말이 틀리면 오늘 국수값 쏜다.”
“어, 맞잖아?” 선배 교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후배 교수가 핸들을 쥔 채 콜럼버스처럼 탄성을 질렀다. “저 표지판에 정말로 삼봉로라고 적혀 있네?” 그럼 그렇지.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디 길 이름뿐여?” 내친 김이라는 듯 선배 교수가 덧붙여 말하기 시작했다. “상암월드컵경기장, 대전월드컵경기장, 광주월드컵경기장, 전주월드컵경기장. 야구장도 잠실구장, 광구구장, 대전구장, 그러니까 담당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축구장이든 야구장이든 그냥 아무 생각없이 그 동네 이름만 갖다 붙이면 골치 아프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만사형통이다 그거지. 이름을 듣고 부르기가 영 맛대가리가 없긴 하지만.”
“정말 그러네요?” 후배 교수가 추임새를 넣었다. “아, 삼례가 어디여? 동학농민혁명 때 2차 봉기가 일어난 유서 깊은 동네잖어? 항일 농민운동의 발상지라고도 헐 수 있는디, 그럼 이 길을 갖다가 동학농민혁명길이라고 쓰면 누가 잡어가나? 그게 암만해도 길다 싶으면 그냥 동학로나 동학길이라고 써도 무방하고, 그러면 애들한테 교육효과도 있을 거란 말이지, 안 그래?”
“소박하게 봉동을 중심으로 해서 생강길이라고 하는 건 어떨랑가요, 성님들?” 후배 교수가 짐짓 사투리까지 섞어가며 다시 나섰다.
“아, 봉동 하면 전국적으로 알아주는 생강 생산지라고 하잖아요.”
“거 좋네. 그 말을 듣고 봉게 이 봉삼로에서 생강 냄새가 코를 찌르는디?” 선배 교수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아마 이름을 이렇게 짓는 사람은 혹시 살고 있는 데가 봉동읍 장기리나 낙평리면 자기 아들이나 딸 이름도 김장기, 박낙평, 이렇게 짓지 않을까?” 우리는 그렇게 낄낄거리면서 봉동으로 향했다.
국수를 맛나게 먹고 후배 교수가 주차장에서 차를 가져오는 동안 나잇값들 하느라고 나와 선배 교수는 거리에서 이쑤시개질을 열심히 해대고 있었다.
“저것 좀 봐.” 선배 교수가 이쑤시개를 입에 문 채 봉동 농협 앞에 서 있는 도로 안내표지판을 가리켰다.
나는 그걸 쳐다보다 그만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거기에는 화살표와 함께 공영주차장의 위치를 알리는 문구가 한글로 적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래 병기한 영문표기였다. ‘공영주차장’ 아래 ‘GONGYOUNGJUCHAJANG’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그걸 누구더러 읽으라고 쓴 것인지, 원.
/송준호= 우석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