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참하면 삼례! 부자하면 삼례! 최제우 신원운동하면 삼례! 이에 따라 호기심이 더욱 발동해 무엇이 또 없나 찾아보니 ‘삼례제일교회’가 있다. 1906년 10월 8일 설립됐고, ‘마로덕 선교사’의 당회장 시무가 5-6회나 되며, 1920년 7월 5일 예배당 남녀 얼굴 가리개 칸막이 포장을 떼어 냈는데 이는 전북 최초의 일이다. 이때부터 통간예배(通間禮拜)가 이뤄졌다. 1935년 12월 16일 오후 2시반 헌당식과 함께 마로덕 목사(신학박사)의 선교 33주년 및 회갑 축하식을 성대히 거행했다. 이는 마로덕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영신학교의 지속적인 운영은 삼례 사람들이기에 해낸 대단한 육영사업이었다. 근대 여성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임영신 여사는 건국 후 처음 여성장관을 했는데 독립운동가, 교육자, 정치인으로서 한 때 삼례에 살았다는 이 사실이 중요하다. 본래 금산 태생이나 기전학교를 나와 일본 히로시마기독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했다. 그 아버지 임구환(任九桓)씨는 1939년 5월 28일 삼례제일교회에서 장로직에 위임됐고, 1940년 미국에서 귀국한 임영신이 아버지 곁 삼례로 왔다는 개연성이 뚜렷하여 삼례의 자랑이 아닌 수 없다. 그 때 나이 41세 5년 뒤 해방이 됐으니 삼례역에서 기차타고 서울 내왕을 한 게 분명하다. 본관 풍천(豊川)·진주(晉州) 따질 것 없이 흠모해야 할 여걸이다. 옛날 기록에는 세거(世居)와 교거(僑居)를 함께 적었다. 갈수록 세거가 자랑이겠지만, 교거·우거(寓居) 역시 소중하기에 경천애인 유허비를 세워 봄이 마땅하다. 임구환은 금산 상옥리 교회를 다녔고, 금산 선교를 맡았던 마로덕과 가깝게 지내다가 그가 당회장으로 있는 삼례교회로 이사 한 게 분명하다. 임영신 미국 유학 역시 마로덕의 영향이 컸으리라 믿어진다. 논 3700여 평을 교회에 내어 놓은 소사(召史) 김철자 님의 이야기가 새삼스럽다. /이승철=국사편찬위/史料조사위원(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06: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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