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처음 접할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두 바퀴로 된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고 잘 굴러가는 게 참 신기했다. 까만 교복을 입고 교모를 쓰고 자전거 위에 올라탄 형들은 참으로 눈부셨고, 우리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내게도 자전거를 타 볼 기회가 왔다. 그리도 부러워했던 자전거 탈 기회를 동네 형이 준 것이다. 학교운동장에서 처음으로 탔는데 뒤에서 잡아주는데도 불구하고 앞으로 반듯이 가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비틀거리며 운동장을 두어 바퀴 돌고나서도 여전히 뒤에서 땀이 범벅이 되어 잡아 주던 형이 손만 놓으면 어김없이 운동장에 자전거와 함께 한 몸이 되어 넘어지곤 하였다. 다음 날도 가슴을 두근거리며 자전거를 탔다. 손잡이를 꽉 잡고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나는 소리쳤다. “형! 놓지 마! 놓으면 안 돼!” 그러면 뒤에서 온 몸이 땀으로 젖은 채 형은 계속 대답했다. “그래! 안 놓아! 걱정 말고 페달만 밟아!” 그래도 불안한 나는 “형! 절대 놓지 마!”를 반복했고 형은 “그래! 안 놓아”를 또 반복했다. 그렇게 한참 달리다 뭔가 허전해서 뒤를 돌아보았더니 형은 저 뒤에서 “이젠 됐다! 너 혼자도 해 낼 수 있으니 이젠 됐다.” 라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최고! 라는 신호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배웠다. 그렇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기대한다면, 먼저 그를 믿어야 한다. 믿지 않으면서 기대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기대감의 밑바탕에는 믿음과 사랑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지혜가 담긴 『탈무드』에 보면 ‘자녀에게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라’는 말이 있다. 물고기 한 마리를 주면 하루를 살 수 있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면 평생을 살 수 있다는 교육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는 경구이다. 내가 자전거를 배우던 순간을 떠올리면 ‘자전거를 잡아주지 말고 스스로 타는 방법을 가르치라’는 말로 바꿔볼 수 있겠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과 ‘자전거를 스스로 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데에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가장 기본적인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어느 위치에 가야 물고기가 많은지, 잡기 쉽고 먹음직스러운 물고기는 어떤 종류인지, 작살이나 그물을 만드는 법과 사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도 역시 어찌하면 쉽게 올라타고, 어찌 해야 두 바퀴로 된 자전거를 일으켜 세워 균형을 잡을 수 있는지, 멈출 때는 어떻게 해야 넘어지지 않는지, 비탈길을 내려갈 때는 핸들의 방향과 브레이크를 어찌 조절해야 넘어지지 않는지, 가장 기초적인 지식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다음으로 직접 실연하거나 함께 시도해 보면서 기회를 주어야 한다. 물고기를 함께 찾고 작살을 꽂거나 그물을 멋지게 던져서 잡아보는 것이다. 동네 형은 이미 내게 자전거 타는 법을 매일 실연해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내게 자전거에 대해 설명해주고 뒤에서 잡아주며 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렇게 함께 하면서 스스로 배우고 익히도록 기다리며 기회를 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자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주고 때가 되면 놓아줄 수 있어야 한다. 계속 돕고자 하는 교육의 과잉이 아니라 교육의 절제가 필요한 순간이다. 혼자서도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때가 되면 스스로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릴 수 있게 떠나보내야 한다. 나 역시 자전거를 혼자서도 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순간, 운동장을 떠나 마을 골목길과 큰길을 환호하며 얼마나 돌았는지 모른다. 그때의 만족감과 희열! 그리고 성취감이란 너무나 컸었다. 그러고 보면 내게 자전거를 가르쳐준 동네 형은 내게 큰 스승이다. 교사자격증은 없었을지라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무엇인지를 몸소 터득하고 실천한 때문이다. 자신이 없을 때는 기초를 가르쳐 주고, 위태로운 상태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뒤에 있다는 든든한 믿음을 주고, 그리고는 가르침을 절제하며 스스로 서게 해주었다. 다시 각광받는 자전거를 보며, 선생님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주 돌아보게 된다. 알맞은 가르침과 알맞은 절제, 제자의 성장을 인지할 줄 아는 판단력, 기쁨으로 떠나보낼 줄 아는 여유... 선생님의 자세일 것이다. 지금도 향수에 젖어 본다. 해 지는 줄도 모르고 그 넓은 운동장을 돌 때마다 나에게 던져 준 형의 환한 미소가 정말 그립다. /문채룡 =전라북도완주교육지원청 교육장
최종편집: 2025-06-24 06: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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