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만나면 “진지 잡수셨어요?”, “밥 먹었느냐?” 이런 인사 시절이 있었다. “굿모닝(good morning:좋은 아침)”이 아니고 무슨 ‘밥 타령이냐’고 우습게 여기던 사람이 있었으나 속 모르는 소리다. 모두 가난하여 ‘3일 3식’이 어려웠으니 응당 물어 볼만하다. 당시 인사 치고는 매우 훌륭한 예절이다. 조선시대 지방관의 정치 초점은 배고픈 백성 없게 하는 것이었다. 농사와 누에치기를 장려하고 구황(救荒)에 힘쓰면 최고 통치자였다. 전라감사 서유구(徐有?:재임 1833-1835)를 절대 잊어서는 아니 된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대동면포(大同綿布)’를 돈으로 내게 했고,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집대성 했으며, 할아버지 아버지의 가학(家學)을 이어 받아 농학에 큰 업적을 남겼다. 한마디로 ‘농학박사’였다. 뭐니뭐니 해도 1834년 흉년이 들자 방황하는 농민의 정착을 위해 고구마를 심도록《종저보(種藷譜)》를 편찬 보급했다. 이처럼 훌륭한 농도의 은인 ‘서유구 선생 불망비’가 완주군 삼례읍 신금리 삼례도서관 마당에 있는데 한 쪽이 깨어져 달아나 이지러진 4각형 이고, 성 ‘서(徐)’자의 ‘왼편(?)’이 잘려나가 “余(여)有?”라 심히 안타깝다. 대구 달성서씨 도위공파에서 알까 보아 걱정이다. 개비(改碑)하는데 큰돈 들 일이 아니지만 식자층, 문화단체, 사회운동자 외에 해당부서에서 조차 눈길을 주지 않아 이 지경이란다. 옛날 서씨 마을에서는 굶어 죽은 사람이 없었다. 혁신도시에 ‘농업진흥원’이 들어온다니 여기서라도 관심을 갖고 ‘서유구 선생’을 재조명했으면 한다. 탐욕스러운 사람보다는 퍼주는 사람이 낫다. ‘남·원·인’ 곁에 살면 얻어먹을 것이 있다니 듣기 좋다. 역사를 전공한 이 지역 김성주 선량이 19대 국회에 들어갔으므로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간다. 그러므로 기대도 크다. /이승철=국사편찬위/史料조사위원(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06: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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