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가 삼례를 ‘삼례(三禮)’라 쓰면 기분 별로이지요. “삼례가면 절 세 번해야 한다” 이런 경우 빙그레 웃습니다. 이 모습 보며 “호랑이·사람 뭘 남기지요?”하고 물으면, 삼례사람 어떻게 보고 이런 쉬운 문제를 묻지! 속으로 이러며 “이름 남기지∼” 당당합니다. 이처럼 말 잘 통하니 다음 얘기 들어주세요. ▲조촌·삼례 똑똑한 인물 많습니다만 조촌 전주에 들어갔으니 제쳐두고… 삼례는 10면3읍 중 맏형 으뜸입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후 신교육이 본격화되면서 지식문화 수준 삼례가 단연 선두 주자이었습니다. 지주 많은데다 칙칙폭폭∼ 철마 달려 1914년 11월 17일 전주역 개업을 하자 이듬해 4월 기차통학 전주군(시내)학교에 갔습니다. 조반 마치고 기차타면 되니 다른 지역은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이지요. 한 4년을 지나자 삼례 월등해졌습니다. ▲김형민 신흥학교 졸업,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해방 후 서른여덟 살에 서울 초대시장이 됐습니다. ▲이우성은 전주사범학교 졸업, 교원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파면, 해방 후 유명 인사로 활동하다 불우하게 갔습니다. ▲금산 부자 삼례로 이사한 임구항 제일교회 장로는, 장관에 국회의원을 지낸 임영신 여사 아버지 아닙니까?(이하생략). 황두현 씨, 강상원(1932년생) 도지사, 이병교 선생, 이영호 전 해군참모총장…외에 여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김춘배(1906년생) 의사 삼례제일교회 자리에서 태어나 1934년 함남을 발칵 뒤집어 놓은 독립운동가로 무기징역…1942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이런 위인을 어찌 잊으리까? 삼례 연고자와 주민들은 손을 맞잡고 기념사업 펼쳐야 합니다. 충남 서천 이상재 생가 가보세요. 이 선생 개화파 지식인들과 교육·계몽운동에 앞장섰으며, 조선일보 사장·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 회장을 지내고, 신간회 회장 독립운동을 이끌다 1927년 순국했습니다. 장수출신 3·1독립만세 33인 박영성 스님 생가터에 ‘죽림정사’를 세웠습니다. 참외·딸기 농사에 삼봉도시 건설, 동학농민혁명광장, 비비정과 호산서원 특히 우석대, 유·초·중·고교 재학생, 수많은 개신교회, 원불교 꿋꿋하여 인물 많으니 누가 나서 운만 띄워도 반은 성공이요, 취지문 나가면 나도 ‘신사임당 한 장 내지요.’ 사업 금방 성취합니다. 성화료원(星火燎原:작은 불꽃이 넓은 들판을 태운다) 모택동 말처럼, 공공기관·사회단체 고개만 까딱까딱해도 책 마을 앞 ‘소녀상’ 세웠듯이 단결력을 보여 전북 들썩하게 합시다. 하나뿐인 목숨 나라 위해 바친 삼례중앙초등학교 출신 김춘배! 우리가 챙겨야지 야속하게 해서야 도리가 아니지요. 삼례! 천하 명성에 맞는 지위와 식견으로 그 손자 김경근 손 한번 흔들어 주세요./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최종편집: 2026-10-25 10: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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