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유품·흔적 이 글을 쓰며 혹 금덩어리나 다이아몬드 생각을 하면 ‘도둑놈’ 소리 들어 마땅하다. 어머님 1912년 오셨다가 1981년 69세에 가셨는데 유품·흔적 없다함은 이도 또한 말이 아니다. 솔직히 어머님 유품·흔적이 없다. 불효막심 지탄받아 마땅하다. 못나고 어두워 세상 물정 몰라 그랬으니 내놓을 얘기도 아니다. △‘달챙이’ 생각이 나 사전을 펼쳐 봐도 설명이 없다. 원래 둥근 수저였으나 오랜 세월 무쇠 솥바닥 누룽지를 긁어 닳고 닳아 바닥 모양이 ‘반달’처럼 된 걸 말하나 안 본 분 답답할 것이다. 이 수저 잘못 쓰면 입 찢어진다. 지금은 부자나 가난한 집에도 없을 것이다. ‘장롱-반짇고리-옷-요강-대야-양말 한 짝 없이 사라졌다. 어떤 변명이나 사정을 말할 형편이 아니다. 베 짜며 깔고 앉았던 판자 조각, 가위, 자(尺)도 없다. 너무나 허전하며 이럴 수 있나 오밤중 허탈감을 못 이겨 벌떡 일어나 기억을 더듬다 자리에 도로 눴다 이불 속에선 줄줄이 생각이 나나 눈에 들어올 게 없다. 이제 지쳐 일어날 힘도, 하나뿐이던 동생 먼저 갔으니 물어볼 사람이 없다. 아내도 잠을 깨어 분위기를 살피다 “어머님 쓰시던 것 저기 있네요.” 이 말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두리번거리니 ‘다듬잇돌’을 가리킨다. 맞다. 이것 하나 남았다. 기적이다. 아내의 말, 방망이도 있단다. “방망이가 무어냐고?”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 이 속담 어려워 모르는 이 있다. ‘다듬잇돌’… 며느리와 함께 쓰시다 놓고 가시니, 이사할 때 끼어들어와 이 구석 저 구석 차지하다가 화단으로 밀려나 비바람·찬이슬·눈보라를 뒤집어쓰고 방치된 상태 무거워 쉬 못 드니 오늘에 이른 것이다. 애잔한 생각이 들어 식구 눈치를 살피며 줄을 매어 끌어 방에 들여놓았고 “왜 들여놓았느냐?” 물을까 봐 그 위에 상자, 두루마리를 놓고 보자기 씌워 숨겨놓았던 것이다. ‘말을 사면 마부 잡히고 싶듯이’ 다듬이 소리 듣고 싶어 고산면 소향리 주민에게 녹음을 부탁드리니 어머니가 보이며 고부 두들기는 방망이 소리 완연하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함께하던 방망이 소리임이 확실하다. ‘시끄러워 숙제 못 하겠이유!’ 불쑥 불쑥 했던 옛 추억 거친 말씨가 떠올라 사죄하는 맘으로 방망이를 찾아냈다. 1981년 어머니 가시고 43년…어머니 쥐었던 방망이를 잡아보니 이것으로 가슴팍을 치고 싶다. 빼빼 마른 몸 뼈 상할까 봐 참으니 눈물이 난다. 나도 가면 뭣이 남을까…미련일랑 저버리자. 지금까지 산 것에 자족하자. 어머님의 흔적이란 나 하나뿐이로구나. 세상에 내 것이 있은들 누가 알아주랴. 봄바람에 닫히는 대문 밖 너머, 손수 일구던 유기농 텃밭에 고추 지지대만 하릴없이 한 줄로 박혀있구나! 가정의 달에 시름 실어 저 멀리 날려버리자.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최종편집: 2025-06-23 20: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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