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황국신민의 서사(誓詞)’ 잘 모를 터이나 우리는 깊은 뜻 설명 없이 강요로 아침마다 외웠지요.
△일본어 원문: “1-私共わたくしどもハ、大日本帝國だいにっぽんていこくノ臣民しんみんデアリマス。 1-私共わたくしどもハ、心こころヲ合あワセテ、天皇陛下てんのうへいかニ忠義ちゅうぎヲ盡つクシマス。 1-私共わたくしどもハ、忍苦鍛鍊にんくたんれんシテ、立派りっぱナ强つよイ國民こくみんトナリマス”
△한국어 번역: “1-우리들은 대일본 제국의 신민(臣民)입니다. 1-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를 다하겠습니다. 1-우리들은 인고단련(忍苦鍛鍊)하여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여름방학 집에서 놀다 ‘해방’소리를 들었습니다. 9월 8일 미군기와 전투기, 탱크 엄호 아래 4만 5000명 군단 병력을 이끌고 인천에 상륙한 ‘미 점령군’은 일제 경찰과 헌병 손을 빌어 첫 임무를 수행했지요.
1948년 8월 14일까지 미군정 맛(신탁통치)을 봤습니다.
남한은 1948년 8월 15일, 그해 9월 9일 북한이 각각 정부를 세워 마냥 유쾌하다 할 수 없었고, 1950년 6월 25일 모내기 때 전쟁 소식을 들었으며,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이승만 대통령은 환영하지 않아 들어내놓고 좋아할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반공 포스터 그리기, 표어 짓지, 웅변대회, 간첩 신고요령 숙지… 남북문제 적대시만 하다 군사쿠데타로 소위 혁명 공약 ‘지금까지 구호에만 그쳤던 반공체제를 재정비한다.’ 로 강화됐습니다.
얘기의 주인공 해방둥이 벌써 80살이네요. 이후 세상사와 역사는 나보다 더 잘 알기에 줄입니다. 무서운 얘기는 북한 미사일이 남한에 날아오는 데 1분. 이것 한 방 맞으면 서울 세 사람 중 하나는 죽는답니다.
여러분 초등학교 저학년 때 화산면 춘산리·승치리, 운주면 용계원, 동상면 산천마을 가옥 불에 탔습니다. 산천에 ‘북부지구 후방부’, 명지목에는 ‘전북도당 북부지도부’가 있었습니다(전북북부지역 전적답사기).
이때 해방둥이 아버지는 치안대로 총 들고 이들과 싸웠습니다. 빨치산 저녁마다 나오는데 주민 해지면 갈 데 없었지요. 큰 집? 작은 집? 친구 집? 처가? 전쟁나면 머리 두르고 갈 데 적으니 평소 보험들 듯 인간관계 잘 맺어둬야 합니다. 자기 집 대문 활짝 열어두고 살 때가 가장 행복한 줄 알아야 합니다.
피난 길 화산사람 고산으로, 고산사람 봉동으로, 봉동사람 삼례로…거기가 거기 갈 데 막막합니다. 성질 급한 사람 피난 길 나섰다가 이산가족 됩니다. 언제나 내 집이 최고! 평소 인심 잃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신문이 지켜주겠다고 합니다. 피눈물 나는 일 없는 民主主義 나라 만들어야(지켜야)합니다.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