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불국사 ‘다보탑’·‘석가탑’ 그 모습 다르듯이, 만경강·섬진강 이처럼 차이난다. 갈대·억새하면 금강 떠올랐는데, 막상 와 보니 만경강 풍경 세상에 내놓고 자랑할 만하다.
삼례교 남쪽 둑 타고 서편으로 내려가면 눈에 들어오는 풍광마다 감탄사 절로 나온다. 좌우 드넓은 평야 그 가운데 직강공사로 이뤄진 만경강 둑 차선 넓고 곧은길에 자전거로 따로 있으며, 긴 다리 밑 거쳐(언더패스:underpass) 다음 또 긴 다리 지나면 축구, 골프, 주차장 보기만 해도 속 시원하다.
제멋대로 자란 나무 군락지 있고, 흰모래 너른 갈대밭이 펼쳐지며, 키 큰 억새 하늘거리는 저편 익산시 높은 집 아파트가 손에 잡힐 듯하고, 김제평야 건너 온 시원한 바람 맑은 공기 머릿속 잡념을 개운케 씻어낸다.
하얀 억새 노인의 흰 머리카락 닮아 백발 부끄럽지 않다. 요소마다 안내판 자세하고, 연인·노인·구경꾼 쉬어갈 정자들 고운 자태로 마음을 잡아당긴다. 술·노래 좋아하는 사람 그냥 스쳐가기 어렵게 아담하다. 운동시설 있고, 간혹 울타리까지 해둬 위험 요소 적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아~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 젖은 이즈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고복수 대표곡 ‘짝사랑’ 1절 가사가 떠올라 흥얼거려진다.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이 대목에서 둑 밑 집들을 보니 마음 울컥해진다.
1980년대 전주↔익산 통근열차 타고 출퇴근하던 때, 삼례 철교 아래 둔치 농사를 봤다. 이 작물들 뉘 것이었던가. 둑 아래 사는 사람들이 묵는 땅 일궈 배추 등 단기간 작물을 심었다.
문상 가 들은 이야기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큰길과 마을에서 먼 곳에 집터의 속설 ‘배산임수(背山臨水)’와 상관없이 바람막이 되는 둑 밑에 움막(집) 가까운 허름한 집을 짓고 방천 넘어 묵는 땅에 작물 심어 먹고살았으나, 나라 질서 잡히면서 ‘경작금지’ 경고판 세워지고, 단속의 강도 점점 높아지자 결국 발 들여놓지 못하니 심히 막막해졌다.
이 당시 만경강 수위 높아지면 농사 망치고, 들판 물 불어 강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면 바다처럼 됐다. 주민들 둑에 올라서서 방천 터질까 맘 조이며 ‘강물만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이제 고복수 노래 아닌 우리 이웃들의 측은한 자태 슬픈 모습이었다.
지금은 너른 길에 자가용 있고, 비닐하우스가 즐비하다.
만경강에 애정 품은 완주군청은 어서 큰 꿈 이뤄 군민(도민) 활짝 웃는 통쾌한 모습을 이끌어내야 한다.
‘쥐구멍에 볕들 날’이 있도록 군민 맘 바로 뚫려야 소멸 소리 잠재운다. 강 이쪽저쪽 가릴 것 없이 유희태 완주군수 희망사업 앞당겨진다. 사람의 운명 ‘乾坤一擲(건곤일척)’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