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면 읍내리에 의류/포목/이불 상회 10여 군데이다. 장사 모두 잘되기 바라며 이 글을 쓴다.
지난 10월 경기도 고양 사는 딸 고양·서울·전주 제쳐두고 완주군 고산읍내 ‘ㅁㄹ쇼핑’에서 이불을 샀다. 동행자 어머니 말 “여주인 자기 친정어머니나 온 것처럼 반깁디다.” 매우 듣기 좋은 소리이다.
난 이불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유심히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다. 1954년 2월 25일 서울 올라가 아직 추운데 미군 담요 하나를 셋이 덮고 잔 적이 있다. 또한 아침에 일어나니 잉크병 얼은 밤, 얼어 죽지 않은 게 신기해 이불 소중하고 신성함을 안다.
내외 한 이불 속에서 만물의 영장이 태어나고 남남 여남이 한 이불 덮으면 윤리·도덕 무너진다. 같은 이불 덮고 자며 글 읽은 문우(文友) 영원한 벗이요, 한 이불 속에서 자는 식구 둘러앉아 한 상 밥 먹으니 혈육 간 근중하여 효와 애정이 우러나온다.
고아 김춘회 씨 장가 들 때 천은 신랑이, 솜은 처녀 집에서 대어 이불 한 채 달랑 마련 결혼했으나, 중년에 사업 잘 돼 성남 분당 수십억 원짜리 집에서 살다 갔다. 1·2층 일부 세 내놓으며 아들 태옥 전세 값 올리지 말라고 부모께 당부한 깊은 뜻 대화가 있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풀 먹인 천 솜이불 움직이면 부스럭 소리 나고 살에 닿으면 차가웠다. 이래서 아래 윗방 잠자리 불편했다. 지금은 고운 이불 가볍고 부드러우며 따뜻해 덮고 둥글어도 소리 나지 않는다.
부잣집 원앙금침(鴛鴦衾枕)이면 최고이었는데 지금은 그 이상 더 좋은 이불·요들이다. 난방시설 좋아지자 이불의 효용성이 전만 못하게 느껴질 뿐이지 이불 없이 못 산다.
이불 사러 간 손님 친정어머니나 형제처럼 대하는 ‘ㅁㄹ쇼핑’ 주인 고운 마음씨는 동지섣달 찬 눈 영하의 밤 이불보다 더 따뜻하다. 이 친절성 고산 인심을 훈훈하게 했다.
황 아무개는 시집 올 때 해 온 이불 시어머님 덮어드리지 못한 걸 평생 후회하며 산다. 지금 헌옷은 수거함에 넣으면 되나 쓰던 이불 버리기 어렵다.
해마다 ‘고산면주민자치회’는 연말이면 어려운 사람 골라 이불 선사를 한다. 위풍 센 한옥집 기름(가스) 아까워 겨울철 추운 밤인데 이를 착안한 위원들도 대단하다.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근처 하숙집들은 ‘일요일과 공휴일 밥 주지 않는’ 야박한 세상인데… 여기서 300km 먼 고산에선 이불 잔치를 하고, 마침 김지숙 씨 여자 면장이니 연말 고산 인심 더욱 따뜻하게 할 것이다. 안 인심 좋아야 덕가 소리 듣는다. 고산 가게마다 장수 성공하기 바란다.
이불 속에 밥그릇 묻어두고 시계 보며 기다리는 여심(어머니, 아내) 생각 눈물이 핑 돈다. 이불 둘러쓰고 울은 여인 있었으며, 하숙집 이불 속에 전구 끌어들여 책 읽은 공부 중독 학생이 있었다.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