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만 넘으면 공주성이다.”, “와와와∼앗!” 10만 함성이 하늘을 찌른다. “방아쇠를 잡아 당겨…”, “탕탕탕…” 일본군 양총이 불을 뿜는다. “쉬이잉∼쾅” 산포·기관포가 하늘을 진동시켰다. 긴 말 줄이고 여기서 죽은 동학군이 7만인! 논산에서 3만 가족 몰살당했다. △우리 완주 삼례에 패잔병 1만 5천인에 가족 3천명이 모였다. 동학군을 때려잡는데(?) 관군 기찰병(機察兵), 토포사(討捕使), 민간인 단체 민포군(民捕軍)이 나서서 농민군을 잡아 가둔다. 전주 옥에만 1천명이 포개져 있었다. 3면은 벽이고 한쪽만 촘촘한 나무 기둥 옥살…여기서 끌려나가면 죽었다. 일본군과 관권에 의해서. 이 이야기는 우리고장 작가 유현종(1939년생:화산출신)의 『장군 김계남』 소설에 나오는 수치이다. 화산-범머리(범울이)-고산-봉동-삼례 지명이 여러 번 나온다. ‘동학 농민혁명과 삼례!’ 삼례는 혁명의 시작과 마무리를 함께 했다. 김계남 장군이 궁사 1만 명을 거느리고 고산-화산-금산-대전을 돌아 ‘공주성을 뒤에서 치겠다.’고 나섰는데, 작전에는 꾀가 무궁무진하다. “김계남 고산에서 잡혔다!” 가짜 뉴스(p191)를 퍼뜨리고, 김계남 장군 닮은 사람을 김계남으로 위장시켜 북을 메고 전주 성안을 조리돌려 전주천 만자 앞에서 처형(?)했다. 여기에 일본군이 빠지지 않은 ‘130년 전 삼례·전주’ 얘기이다. △유원영 『삼례읍지』 발간위원장의 특출한 인격으로 「읍지」가 완성됐다. 누구나 2주 만 읽으면 20년 삼례 사신 분보다 더 잘 알아 박사 소리 듣는다. ‘눈알을 팔려는 교회 집사’, ‘서른여덟에 서울시장을 한 김형민’, ‘자기 땅에 삼례역사를 세운 박영철’, ‘사비 내어 삼례초등학교를 도운 황두현’, ‘이민교 아버지 이우성’, ‘의분 없이 못 읽을 김춘배 이야기책’, ‘신금리 도서관 자리 임명환 군수에게 내놓은 장로’…이야기마다 흥미진진하다. △산사태 둑 터질 걱정 없고 삼례-창덕면-오백조면-우서면(紆西面)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紆州)’를 만나니 본관 ‘우주황씨(황양규)’에게 전화 걸어보면 ‘완주군의 정체성’을 쉬 알고 함께 할 동역자가 될 수 있다. 비봉면 산골 이존화는 삼례 분들 덕으로 ‘국회의원’ 재선(3-4대)을 했다. 석전 이병교 선생이 동초등학교를 세웠는데 외손 구정태 교육학박사와 김춘배 의사 김경근 친손자(목사)를 초청, 강당에서 우렁찬 합창 한 번 해볼 만하다. 동학농민혁명 삼례 봉기 ‘역사의 광장’은 삼례 정신의 교육장이다. 전봉준 장군은 순창(피노리 복흥산)에서 참모 배신자(최경선) 밀고로 잡혀 세상을 마쳤다. 삼례는 배신자를 용납하지 않는 엄정한 고장이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이는 삼례·완주인의 노래다. ‘갑오년 난리’·‘동학란’이 오늘날 으로 대접받는 이름. 참례(參禮)하는 삼례인이 되어야 한다. / 유하당(柳河堂) = 前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최종편집: 2025-06-24 03:34:09
최신뉴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오늘 주간 월간
제호 : 완주전주신문본사 :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봉동읍 봉동동서로 48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전라북도, 다01289 등록(발행)일자 : 신문:2012.5.16.
발행인 : 김학백 편집인 : 원제연 청소년보호책임자 : 원제연청탁방지담당관 : 원제연(010-5655-2350)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학백
Tel : 063-263-3338e-mail : wjgm@hanmail.net
Copyright 완주전주신문 All rights reserved.